◎요르단 유일항구… 난민 차량만 왕래/개전 이후 휴양객·화물선 종적 감춰/호텔 텅텅비고 가게 문 닫은 곳 많아「홍해의 진주」로 알려진 요르단의 아카바항이 걸프전쟁의 여파로 시름시름 앓고 있다.
여느 때 같으면 화물선이 분주하게 드나들고 북구의 한파를 피해 나온 휴양객들로 붐볐을 아카바항에는 이집트로 피란을 가기 위해 내려온 피란민들의 차량만이 가끔 눈에 띌 뿐 정적이 감돌고 있다.
아카바항은 요르단의 수도 암만에서 약 3백50㎞ 남쪽에 위치한 홍해 연안의 미항.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무대로 하와이의 「하나우마베이」를 연상케 하는 아카바의 요즘 기온은 최저 3도에서 최고 20도 정도.
인구 4만의 아카바항은 요르단 유일의 항구인 동시에 걸프전쟁을 치르고 있는 이라크에도 바스라항을 빼고는 하나뿐인 해상통로의 구실을 하고 있다.
바로 이같은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아카바항이 걸프사태 후 7개월째 시달림을 받고 있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직후 유엔의 대이라크 봉쇄조치로 뺨을 맞은 데 이어 걸프전 발발 이후에는 그나마 가끔 드나들던 화물선마저 종적을 감췄다.
걸프전쟁이 앗아간 것은 비단 화물선뿐만이 아니다. 매년 이맘때쯤이면 수천명씩 몰려들던 스칸디나비아지방의 휴양객들이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아콰마리나」 「레드시」 「미라마르」 등 주요 호텔의 객실이 텅텅 비어 있고 「알리바바」와 같은 대형 식당에도 셔터가 내려져 있다.
일반 소매상들도 세 집 건너 한 군데만 문이 열려 있고 그나마 문을 연 집도 파리를 날리고 있다. 아카바 시내에서 카셋판매상을 경영하는 카티프씨(31)는 『지난 3∼4개월 동안 외국 관광객은 눈을 씻고 봐도 없다』고 하품을 하면서 『사담·후세인(이라크 대통령)을 찬양하는 신곡이 많이 팔린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렸다.
40대 중반의 한 팔레스타인계 유람선 선장은 아카바항으로부터 서쪽으로 불과 수백 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이스라엘 점령 에일라트항을 가리키면서 『저기에는 이라크의 미사일 공습을 피해 텔아비브나 예루살렘에서 도망나온 유태인들로 북적댄다』고 말한 뒤 『전쟁이 본격화되기만 하면 저들을 모두 이 바다에 쓸어넣고 말겠다』며 적의를 번득였다.
종려나무가 듬성듬성 심어져 있는 시내를 지나 5분 가량 북쪽으로 달리니 왼편에 「아카바국제공항」이라는 작은 팻말이 보였다. 과거 사우디아라비아나 쿠웨이트 왕가의 젊은이들이 휴가차 자가용비행기를 몰고오곤 하던 아카바공항은 이제 이라크와 쿠웨이트 등지에서 피란나온 아시아계 난민들을 봄베이로 실어나르는 아에로플로트항공기의 주요 기착지로 변해 있다.
공항 부근에는 또 이라크나 쿠웨이트에서 공사를 마치고 「피란」나온 현대건설 소속 덤프트럭 불도저 등 중장비 1천6백여 대가 보관돼 있다.
서방의 대이라크 「목죄기」 등쌀에 질식상태에 빠져 있는 아카바항에는 이달말께 10만톤급의 유조선 1척이 취역하게 된다. 요르단은 걸프사태 이후 대형 유조차를 이용해 이라크로부터 원유를 들여왔으나 지난달말 요르단이라크 공로상에서 8명의 요르단 트럭운전사들이 다국적군의 공습을 받아 사망한 뒤 앞으로는 해상을 통해 원유를 수송키로 하고 우선 7백50만달러를 들여 사상 최초로 원유수송선을 도입키로 결정했다.
아카바항은 과거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을 잇는 이 지역의 해상요충지였다. 항구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아카바산맥 기슭에서는 최근까지도 중국 북송시대(10∼11세기)의 도자기류가 출토되고 있다.
걸프전쟁이 격화되는 경우 아카바항에는 이집트로 피란을 가는 수십 만 명의 피란민들이 들이닥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아카바(요르단)=이상석 특파원>아카바(요르단)=이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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