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수서의 수렁에 빠져 있다. 그 수렁은 쉽게 빠져나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의원들의 뇌물외유,대입시부정사건으로 분노하고 한탄하던 사람들은 수서택지 특혜공급이라는 「6공 최대의 의혹사건」을 보면서 신미년 한 해 동안 또 얼마나 충격과 파장이 큰 사건이 터질까를 걱정하고 있다.수서사건에 관련있는 사람들은 이미 많은 말을 했다. 그것은 주로 발뺌이나 떠넘기기,물귀신작전이었고 조직의 논리와 관계기관의 역학구조상 어쩔 수 없었다는 체념의 고백이었다. 그런 변명으로 정부와 공직에 대한 불신은 가중되고 집없는 서민들의 분노가 더욱 커져가는 상황이다.
우리는 이 사건을 계기로 각자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만약 그 상황에서 서울시장이라면,건설부 장관이라면,대통령비서라면,건설위 소속 국회의원이라면,아니 그보다 더 절실하게는 지위가 훨씬 낮은 관계공무원이라면 어떻게 처신했을까. 과연 나라면 부끄러움없이 엄정하게 공직의 윤리를 지키고 떳떳하게 올바른 견해를 표명했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채근담에는 「서수도덕자 적막일시 의아권세자 처량만고」(도덕을 지키며 사는 사람은 한때 적막하지만 권세에 의지하고 아부하는 자는 만고에 처량하다)라는 쓸쓸한 말이 나온다. 또 「유방백세 유취만년」(좋은 향기는 백년을 가지만 더러운 악취는 만년 동안 진동한다)이라는 말도 이런 경우 되새길 만한 경구이다.
그러나 그런 따위의 명언에 감동하거나 만고,만년이라는 알 수 없고 잡히지도 않는 세월의 갚음을 믿어 달라질 만큼 지금 우리는 순진한가. 일상의 생활과 활동에 있어서 의와 불의가 칼로 벤듯이 뚜렷할 만큼 현실의 인간관계가 단순명료하던가.
구조적이고 집단적인 불법·비리로부터 의와 선을 지켜나가는 노력은 결국 모질고 모가 나며 주변으로부터의 질시와 소외,유·무형의 불이익까지를 각오해야 하는 어려운 일이다. 지위가 높은 사람이거나 한 조직의 장부터 먼저 청백해야 하며 사회 각계에 옳은 것을 지켜나가려 애쓰는 사람들이 늘어나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말해보아도 공허하기는 역시 마찬가지이다. 도덕교과서같은 말이나 아름다운 수신의 문자는 한때의 위안은 될지언정 우리들 범인들에게 현실의 의지가 되지는 못하고 있다.
그만큼 우리는 이미 총체적으로 부패해 있고 옳은 것을 지키기에 너무 나약하며 잘못을 선뜻 인정하지 않을 만큼 비겁한 인간이 돼가고 있다.
불법·비리로 죄를 지은 사람들은 당연히 벌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들을 보면서 우리는 곰곰이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아야 할 것이다. 이 시대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가장들의 갈등과 시련은 너무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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