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철강단지 조성 1조2천억 소요/자금충당 위해 사운 걸고 「특별공급」 추진/로비 함께 「집단민원」 압력 동원한보주택이 3년여 동안 그룹전체의 사활을 걸고 추진해온 수서택지 특혜공급은 지난 88년 이후 한보그룹이 치밀한 계획 아래 밀고나온 「작전」이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한보는 경영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은 상태에서 아산만매립사업을 역점사업으로 추진했다. 아산만종합개발계획에서 제외된 충남 당진군 송옥면 일대 90만평을 1조2천억원을 들여 매립,철강공업단지로 조성한다는 것이다.
한보측은 이같은 거대한 사업을 시작하면서 융자 8천27억원 자체자금 3천7백59억원을 조달키로 하고 자체자금은 부산철강 공장부지에 아파트를 지어 2천5백억원을 마련하는 한편 서울에 보유한 대규모 토지에 아파트를 건설해 여기서 나오는 수입으로 충당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한보는 이같은 사업계획에 따라 당시로서는 아파트 건립이 절대 불가능한 서울 강남구 수서동 일대 자연녹지를 88년 4월부터 임원 4명의 개인 명의로 사들인 것으로 보인다.
한보의 이같은 전략에 대해 당사자들은 모두 입을 다물고 있지만 관련업계와 서울시관계자 등의 말을 종합하면 한보의 계산이 무엇이었는지는 충분히 짐작이 간다.
한보가 수서지구 일대의 자연녹지를 사들이기 시작한 88년초 당시 이 일대가 택지개발지구로 묶인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상식적으로는 땅매입을 포기해야 할 시점에 한보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뛰어든 것이다.
이에 대해 업계에서는 부동산의 귀재로 꼽히는 정 회장이 「주택건설사업자가 지구지정 1년 전부터 소유한 택지개발지구 안의 토지를 사업시행자(서울시)에게 양도한 경우 택지를 특별공급할 수 있다」는 택지개발촉진법 시행령 13조의 2를 이용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유력하다.
그러나 주택2백만호건설계획에 따라 정부가 택지개발을 적극 권장하면서 예상보다 빨리 89년 3월에 수서지구가 지정돼 한보의 예상은 빗나갔다. 게다가 89년 8월1일부터 주택업체가 소유한 땅에는 조합아파트를 지을 수 없다는 방침이 발표돼 설상가상의 지경이 됐다.
이때부터 한보의 로비가 본격화된 것 아니냐는 관측이 유력하다. 한보주택은 사장 이사 부장 등 고위간부들이 서울시 공무원 출신으로 돼 있다.
특히 한보건설 사장 강병수씨는 서울시올림픽준비단장 재직 때인 88년 국회에서 노량진수산시장 관련비리가 문제화되자 당시 산업경제국장으로서의 업무처리와 관련,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관리공사 사장직을 내놓고 89년초 한보주택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때 시 내부에서는 강씨가 수서문제 해결을 위한 얼굴사장으로 영입된 것이란 평이 지배적이었다.
실제로 강 사장은 전 도시계획국장 등에게 치열한 로비를 벌여 『시 선배로서 그렇게 처신할 수 있느냐』는 면박까지 받은 것으로 소문이 나 있다. 한편 정계 등에 대한 로비는 정 회장이 직접 맡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정 회장이 『전혀 청탁과 무관한 사람에게도 거금을 아무 조건없이 선뜻 내놓는가 하면 시 간부들이 참석하는 정책회의 결과를 회의종료 5분 이내에 알아낼 만큼 곳곳에 심복을 심어놓았다』는 얘기가 널리 퍼져 있다.
아직 사직당국의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아 확인된 바는 아니지만 서울시의 정책회의에 장병조 청와대문화체육담당비서관이 참석했고 여당에 거액의 정치자금이 여러 차례 들어갔다는 설은 정 회장이 하키협회장과 민자당 재정위원을 맡고 있는 점과 무관치 않을 것으로 추측된다.
한보의 이같은 로비는 3천3백60명의 주택조합원을 등에 업고 더욱 영향력을 발휘한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수서지구가 택지개발지구로 지정된 89년 3월 이후에도 12개 조합 1천3백64명을 추가로 조합원으로 끌어들여 집단민원을 수단으로 자신들의 목적을 관철시키려 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한보는 또 시나리오에 따라 임원 명의 땅을 주택조합에 넘기는 과정에서 제소 전 화해라는 변칙적 방법을 사용했다.
즉 88년 9월 이 지역이 토지거래 허가지역으로 묶여 조합주택 건설용으로는 조합원들에게 매각할 수 없게 되자 한보주택과 조합원 사이에 채권·채무관계가 있는 것으로 계약서를 꾸며 계약이행을 하지 않을 경우 소유권 등기이전에 동의한다는 조건을 붙여놓은 뒤 이를 근거로 당사자간 화해조서를 작성,판사의 확인을 받아 소유권 이전등기를 마쳤다.
치밀한 계획에 의한 한보의 특별분양 시나리오는 여러 가지 대목에서 반증되는 것이지만 계획관철 과정의 비리는 검찰의 수사에서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이광일 기자>이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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