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우려 전초 공군 사용 안해/인기 군엘리트 경계 숙청 일쑤/군내부 3개 보안조직… 장교단도 고향 출신 많아미 시사주간 US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지는 최근호에서 개전 초기 이라크가 공군력을 사용하지 않은 것은 후세인 대통령이 공군 주도의 쿠데타 가능성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다음은 후세인이 다국적군뿐만 아니라 자국군도 적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US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지의 기사를 요약한 것이다.<편집자주>편집자주>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에게는 다국적군만이 적이 아니다. 자신에게 아랍세계의 영광을 안겨줄 이라크군도 위협이 되고 있어 그는 외적과 싸우는 한편 내부의 적을 두려워하고 있다.
이란이라크 전쟁 때 후세인이 취했던 기묘한 전략은 자국군에의 경계라는 관점에서 설명되었다. 자국군에의 의심은 걸프전쟁에서도 그의 행동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미군 지휘관들은 후세인이 개전 당시 왜 공군력을 사용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다. 이라크문제 전문가인 이스라엘의 아마치아·바람씨는 『후세인은 자국 공군을 매우 두려워하고 있다. 이라크에서는 대부분의 쿠데타가 공군의 공격으로 시작되기 때문이다』고 지적한다.
후세인은 지금까지 오랫동안 공군의 고삐를 조여왔다. 군사평론가들은 그런데도 10년 전 이란과의 개전 당시 이라크가 왜 제공권을 잡는데 실패했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86년 이라크가 전략거점인 포반도를 빼앗긴 후 공군 장교들은 이란에 대해 공군력을 더욱 자유롭게 행사토록 허용해 달라고 후세인을 설득했었다. 89년 1월에는 군대 창설기념일의 퍼레이드가 중지됐다. 공군 장교들이 후세인의 사열대를 폭격할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전해졌었다.
스스로 군 최고사령관직을 거머쥐고 있지만 이렇다 할 군 경력을 갖지 못한 그는 군 출신 엘리트들을 시기해 경계하고 있다. 임무를 너무 잘 수행해내거나 너무 자주성을 발휘하거나 민중의 인기가 지나친 군간부들은 없어져버리기 일쑤이다.
83년 이란과의 정전합의 후 후세인은 우수한 장교 10여 명을 처형했다. 파오반도 탈환의 공로자이며 병사들로부터 「아랍의 로멜 장군」으로 칭송받은 마헬·압델라시드도 그 중에 포함됐었다.
그는 3개의 보안조직을 군내부에 침투시켜 모든 지휘관애게 절대로 바그다드로 진군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넣고 있다. 후세인의 배다른 동생 사와비·이브라힘이 이끄는 무하마라트(종합정보국)는 모든 정보활동을 통괄하고 있으며 여당인 바트당 조사국은 모든 장교의 활동에 눈을 번뜩이고 이스티프바라트(군정보부)는 군내부 반대파와 불만분자들을 뿌리뽑는 임무를 맡고 있다.
그러나 이 3개의 보안조직만으로는 후세인의 안전이 충분히 보장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바트당 소속 민병대와 인민군까지 거느리고 있다. 인민군은 군의 반란에 대비해 대공·대전차병기로 무장하고 있다.
군 장교단은 소수파인 이슬람교 수니파지역 출신자로 구성돼 있으며,특히 후세인의 고향인 티크리트 출신자가 많다.
그러나 전황이 위태로워지면 겹겹이 둘러쳐진 후세인의 안전철조망도 충분하다고 하지는 못할 것이다.<워싱턴=정일화 특파원>워싱턴=정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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