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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못찌르는 정부 대응(고물가시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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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못찌르는 정부 대응(고물가시대:중)

입력
1991.0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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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력 동원 「비경제적 투약」뿐/재정팽창속 임금억제·소비절약만 강조/공공료 억제등 설득력 있는 대책 아쉬워1월중 물가는 80년 이후 최고의 폭등세를 보였지만 이에 대응하는 정부의 자세에 아직 확고한 「안정」의지가 실리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는 연초 목욕·숙박요금의 기습담합 인상 이후 지난달 5일자 순기물가상승률이 자그마치 1.3%를 기록하자 사태의 심각성을 뒤늦게 깨닫기 시작했다.

지난달 7일 경제기획원 차관이 주재한 정례실무회의를 비롯,30일까지 1월 한 달 동안 무려 14차례나 각종 물가대책회의를 열었다.

한 달 동안 14회씩 물가회의를 가진 것부터가 건국 이래 처음있는 일이거니와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그것도 공휴일에 경제장관을 비상소집하기까지 해가면서 대책마련을 강조한 것 역시 극히 이례적인 대응이었다.

그러나 경제운용과 무관한 검찰청까지 가세한 14차례의 대책회의가 담긴 내용은 행정력 동원 외엔 그다지 인상적이고 실효성 있는 대응책이 없다는 지적이 많다. 물가폭등이라는 경제사회적 현상을 치유하려는 처방전이 행정 단속강화 수준의 지극히 비경제정책적 「투약」에 그쳤다는 평가다.

당국이 이처럼 핵심을 찌르지 못한 미봉적 대응제시에 그칠 수밖에 없는 속사정은 물론 있다.

원론적으로 말해 물가상승에 대한 1차적 처방은 재정·통화긴축으로 요약되는 총수요관리밖에 없다는 사실을 당국인들 모를 리 없다. 그렇지만 물가에 가장 밀접한 영향력을 갖는 재정·통화·환율 등 주요 정책변수를 안정지향적으로 운용할 형편이 되지 못하는 게 당국의 고민이다.

이승윤 부총리와 김종인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은 약속이나 한 듯 이 견해에 공감한다. 경제팀 양사령탑은 『80년대 중반처럼 물가안정이란 한 가지 목표만을 달성하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면서 『제조업 경쟁력을 높이고 도로·항만 등 사회간접자본을 확충하는 것이 결국엔 장기적인 물가안정을 이룩하는 길』이라는 주장이다. 이 논리는 당연히 재정통화긴축 등 총수요관리 대응이 현실여건상 어렵다는 쪽으로 흐르게 된다. 또 임금인상억제와 소비절약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해결책을 모색케 되는 것이다.

이 부총리는 최근 사석에서 자기몫 요구와 물가안정이 서로 상충하는 사례를 들어 고충을 호소하는 일이 잦다.

며칠 전 한국노총을 방문시 대부분 노동관계자들은 물가안정을 역설한 반면 몇몇 관계자는 교통요금 현실화가 불가피함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또 농산물가격이 상승하는 데 대응,수입을 늘려 수급안정을 꾀하려 하면 『소득향상기회를 원천봉쇄하는 「반농민」적 정책』이라고 반발한다는 것.

총수요관리가 어려운데다 물가안정을 둘러싼 이해상충도 많은 현실을 감안,당국이 「고육책」으로 내세운 것이 국세청 검찰 경찰과 공정거래위까지 망라한 핵정력 동원이라는 결론이다.

정부는 또 특히 계절적 가격변동이 심한 농수산물값을 안정시키기 위해 유통구조의 획기적 개선을 시도할 방침이다. 농산물가격은 오를 땐 중간상임 등 유통업자가 재미를 보고 폭락 땐 농민들이 손실을 떠맡는 게 현실이고 보면 유통구조개선이 물가안정에 도움을 주리라는 것은 수긍이 간다.

그러나 당국의 두 가지 대응책에 대한 경제전문가들의 평가는 의외로 냉담한 것 같다.

먼저 농산물 유통개선이란 민간 상거래의 관행을 뜯어 고쳐야 하는 대역사. 제도를 바꾸는 차원을 넘어 관행을 바꾸는 일이란 상인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더라도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장기과제여서 단기간내 물가안정효과를 기대하긴 어렵다는 지적이다.

행정력 동원을 통한 물가관리체제가 인상시기를 다소 늦추는데 불과한 미봉책이라는 사실은 당국의 실무자들도 인정할 정도다.

걸프전쟁으로 유가불안심리가 팽배해 있고 공공요금이 마구 뛰는 현실 속에서 바람잡이식 으름장이 곧 한계에 부딪칠 것은 자명하다.

이 부총리는 지난해 하반기 이후 공공요금 현실화가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강조해 왔다. 5공 이후 역대 장관들이 저마다 재임중 물가가 대폭 올랐다는 비판을 면키 위해 손쉬운 공공요금부터 무작정 억눌러 온 결과 이제 더 이상 견디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부총리는 지난해말 철도,지하철,상수도,민간항공료를 각각 인상조정했고 내달중 버스요금 등 일부 공공요금의 추가 인상도 약속해 놓은 상태다.

그러나 꽤 설득력있게 들리는 이같은 공공요금 현실화론을 뒤집어 보면 묘한 여운을 함축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각종 공공요금의 원가부담과 직결되는 유가·전기·가스요금의 최근 몇 년 간 동향은 ▲유가가 86년 이후 7차례 도합 40% 가량 ▲전기료가 82년 이후 7차례 30% 가량 ▲LNG가 87년 이후 7차례 43% 가량 각각 인하됐다. 즉 85년 이후 공공요금이 동결되다시피한 배경엔 당국의 인상불허방침 외에도 이같은 자체인하 요인이 있었던 것.

물론 그 동안 급격히 오른 인건비부담을 도외시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걸프전쟁 이후 국제유가가 정부예상보다 배럴당 7∼8달러나 낮게 유지되고 있는 실정이어서 정부가 서둘러 공공요금을 현실화할 경우 자칫 엄청난 특혜를 준 결과로 낙착될 우려도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연쇄인상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선 정부가 앞장서 『걸프전쟁 윤곽이 잡힐 때까지 공공요금 현실화를 유보한다』는 대국민 약속이 절실하다는 지적인 셈이다.<유석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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