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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여러분­./김창열칼럼(토요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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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여러분­./김창열칼럼(토요세평)

입력
1991.0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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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국회는 뇌물외유의 늪을 좀처럼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국회는 그 늪을 벗어나고자 허우적거릴 윤리적·정치적 기력조차 잃은 듯합니다. 어제 보도된 바,공직자 윤리법에 따른 여러분의 재산등록 현황이나,여러분 스스로 발기했던 의원윤리강령의 향방을 보아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아침 신문을 읽으며 나는 영국 사람들의 조크 한 토막을 상기했습니다. 그 조크는 이렇게 말합니다.

­성경에 십계명이 있다. 죽이지 말라,훔치지 말라,간음하지 말라는 등 마땅히 지켜야 할 도덕율들이다. 그러나 정작 조심할 것은 성경에 없는 제11계명,왈 들키지 말라는 것 뿐이다. 십계명을 어기고는 무사할 수가 있어도,제11계명을 어기면 반드시 그 값을 치러야 하기 때문에­.

지금 우리 국민은 꼭 이 농담 같은 현실을 보고 있습니다.

여러분 동료 중 셋은 제11계명을 어겼습니다. 그들은 당연한 값을 치러야 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비록 심계명을 어겼더라도 관례라는 방벽 뒤에 숨어서 무사할 수가 있습니다. 불쌍하기는 그 공짜여행의 관례를 자폭하여 제11계명 위반을 자공한 여러분의 세 동료뿐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그들을 대신해서 변명을 하자면 공짜여행 관례는 우리 국회만의 일이 아니란 것입니다.

쉬운 예로,미국의 시민운동단체 퍼블릭 시티즌의 작년보고서는 미국 상원의원 1백명의 공짜여행­강연회 초청연사로 불려가서,강사료를 받고도 여비를 초청자측에 부담시킨 경우­이 87년 6백69회,88년 4백52회,89년 5백회 이상에 이른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심지어 미네소타주의 데이비드·듀렌버거 의원은 89년 한 해,20차례나 나들이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뇌물외유는 아니지만,뇌물내유의 관행이 미국의회에도 있다는 얘기가 되겠습니다.

그러나 얘기는 여기에서 그치지를 않습니다. 미국 상원은 윤리개혁법으로 의원들의 공짜여행을 국내 3일,국외 1주간으로 제한했습니다. 퍼블릭 시티즌은 물론 공짜여행의 전면 금지 캠페인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퍼블릭시티즌이 거명했던 듀렌버거 의원은 작년 7월 강연료를 허위신고한 것 등의 혐의로 96 대 0의 동료의원 표결로 징계를 받았고,재출마를 포기했습니다. 지금은 존·글렌 등 대통령 물망에까지 올랐던 유력한 상원의원 5명이 영향력을 잘못 행사했다고 하여,윤리위원회 동료의원들의 사문을 받고 있습니다. 89년 짐·라이트 하원의장이 금전관계 일로 사퇴했던 일까지는 거론 않겠습니다.

이런 일들이 바로 타산지석일 것으로 나는 생각합니다. 현실정치판에 말 못할 관행이 있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관행을 자정하고 자경하는 노력이 있고서야 의회정치의 장래가 보장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뜻에서 우리 국회 스스로가 의원윤리강령을 제정하겠다고 나선 것은 기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것이 국민들의 막중한 부탁에 부응하고 3권분립 국회의 자율을 지키는 길도 됩니다. 윤리강령이 치레나 면피를 위한 것에 그쳐서는 아니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음 3가지를 당부하고자 합니다.

첫째 윤리강령의 실효를 보장하기 위한 전임관이 필요합니다. 미국의회 윤리위의 특별자문관과 같은 것입니다. 그가 의원들의 윤리문제를 조사할 뿐 아니라,의원활동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과 진정을 처리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행정부의 의원수사 등 섣부른 간섭을 막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둘째 경조사의 화한보내기 금지 등 의원들의 씀씀이를 줄여주는 방도를 강구해야 합니다. 정치와 돈의 함수관계를 끊자면 의원활동비 역시 양출계입이 아닌,양입계출의 상도를 회복토록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셋째 국회의원은 재산을 공개해야 합니다. 이 정도의 결단 없이는 지금의 깊은 늪을 벗어날 길이 없을 줄로 압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아예 선거법을 고쳐 국회의원으로 입후보하는 모든 사람이 재산을 공개토록 했으면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유권자들에게 판단과 감시자료를 제공하고,정치지망생들에게는 신중한 결심을 촉구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요컨대 의원들의 윤리수준은,의원들이 국민들의 부단한 감시에 자복함으로써만 보장이 된다는 것입니다. 윤리강령에 이 뜻이 충분히 반영되어야 함은 물론,의정에 관한 입법,국회의 운영방식이 모두,그 한 초점을 여기에 모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의원소환제(Recall)의 입법도 고려할 만합니다. 그런 제도가 있다면,이번 뇌물외유 같은 경우에서처럼 의원직 사퇴문제를 놓고 당과 당사자가 밀었다 당겼다 하는 추태를 기다림이 없이,유권자 스스로 그들의 진퇴를 결판낼 수가 있을 것입니다.

또 같은 취지에서 국회운영의 보다 폭 넓은 공개와 홍보가 필요합니다. 의사록 등 국회기록물의 발행부수를 늘리고 텔레비전 생중계를 활성화하는 등 방안을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되기는 어렵고,현역 의원으로서 결심하기 어려운 면도 없지 않을 줄로 압니다. 그러나 이 정도는 여러분 정치생명의 자구를 위해서 꼭 이루어야할 일이 아닌가 합니다.

「13대 국회의원이라면 다시는 표를 안 찍겠다」는 분노어린 풍조가 더 번지기 전에 여러분 스스로 이 정도의 자구책은 찾아야 한다는 뜻입니다.<상임고문·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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