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좌농성 5시간만에 사선넘어/서류미비등 꼬투리 바그다드왕복 3차례/「월경」·「로비」 의견충돌 일행 격론끝 헤어져현대직원·근로자들은 이라크를 탈출할 때까지 서류미비를 꼬투리 삼아 국경을 통과시켜 주지 않는 이라크 관리·초병들 때문에 바그다드를 떠난 뒤에도 3차례나 바그다드에 다녀와야 했다.
▲22일=이날도 밤늦게까지 카나킨의 이민국 사무실에 특별출국증명 발급을 요청했으나 『책임자가 없으니 기다려라』 『외무부의 출국증명서를 받아오라』고 미루기만 했다.
▲23일=일행은 할 수 없이 바그다드로 또 돌아가 이라크 외무부 이민국에 여권을 모두 맡기고 개인별로 출국희망의견서를 작성,겨우 출국승인서를 얻어냈다. 이미 받아놓은 비자도 이날로 만료돼 통사정한 끝에 하루를 연장받았다.
차에는 두달 가량분의 식량을 싣고 있었으나 경황이 없고 식수 구하기도 힘들어 거의 굶고 다녔다.
▲24일=국경의 이민국 사무실에 찾아가 이날 출국하려 했으나 다음날이 이라크의 휴일,24일은 우리의 토요일격이어서 『26일 상오 9시에 다시 오라』고 해 실패했다.
다급해진 일행은 편법으로 국경을 넘기로 했는데 요르단 쪽으로 가자는 의견도 나왔으나 그곳에 가기에는 휘발유가 편도분밖에 없어 가까운 이란 쪽을 뚫어보기로 결정했다.
하오 2시께 바쿠바의 대피소로 돌아왔을 때 김종훈 이사 등 9명은 『국경을 넘자』,나머지 5명은 『바그다드로 돌아가 로비를 해보자』고 맞서,격론끝에 헤어졌다. 바그다드로간 5명과는 다시 만나지 못했다.
김 이사 등 현대직원 9명과 태국·방글라데시인 26명 등 35명은 바쿠바를 떠나 이민국 사무실로 가지않고 국경검문소로 직행,하오 5시께 도착했다.
그러나 또 『24일자로 출국비자 유효기간이 만료됐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모나씨(35)가 울면서 『대표인 김 이사라도 보내줘 생사나 알리게 해달라』고 호소,허락을 받았으나 김 이사는 『혼자는 못간다』며 비자를 집어던지고 모나씨와 함께 연좌농성을 하는 등 5시간여 떼를 쓴끝에 간신히 출국허가 스탬프를 받았다. 그러나 짐검사를 하면서 까다롭게 구는 초병에게 차를 뺏기고 박휴중(35) 모나씨 부부와도 눈물 속에 작별해야 했다.
국경을 넘은 것은 밤11시. 캄캄한 밤에 1㎞가량 허기·추위와 싸우며 걸어간 일행은 이란의 코스라비에 도착,경비병에게 말해 적십자수용소 텐트에 들어갈 수 있었다. 사지를 벗어났다는 안도감이 피로를 덜어주었으나 그곳은 몹시 추웠다.
김 이사는 텐트를 배정받아 모피를 깔고 누워 시계를 봤을 때가 정확히 25일 0시였다고 말했다.
▲25일=테헤란의 한국대사관에 연락한 뒤 수용소에서 이민수속을 밟고 세관검사를 받았다. 「이제 고국으로 간다」는 기쁨에 눈물을 흘리는 직원들도 있었다.
적십자사가 제공한 버스편으로 하오 2시께 출발,하오 9시께야 바크다란에 도착했다. 이곳에는 대사관직원과 현대직원이 마중나와 일행을 위로해 주었다. 바크다란의 적십자가 수용소에서 1박했다.
▲26일=상오 6시에 출발,버스 편으로 4백㎞ 떨어진 테헤란에 하오 9시께 도착했다. 이미 한국에 다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 한다. 대사관측이 잡아준 아자비호텔에 투숙,오랜만에 샤워를 하며 쌓인 피로와 긴장을 풀었다.
▲27일=이날 고국의 가족들과 첫 통화를 했다. 그 뒤 귀국할때까지 일행은 대사관측이 마련해준 위로만찬에 참석하거나 휴식을 취하면서 귀국비행기를 기다렸다.
현재 이라크에 남아 있는 것으로 보도된 13명은 의견이 갈려 헤어진 5명과 이라크북부 현장의 8명 등 13명.
귀국한 현대 직원들은 이들의 그후 소식을 전혀 모르고 있으나 안전하게 대피하고 있을 것이라며 먼저 나온 미안감을 달래고 있다.<이재열·김철훈 기자>이재열·김철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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