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은 유죄」라는 법원의 판결은 수사기관의 초법적인 가혹행위에 대한 정당한 응징이라 할 수 있다. 아울러 인간을 황폐케 하는 5공식 수사행태를 청산하는 단죄이기도 한다.고문은 증거가 없도록 자행됨으로써,과거엔 피의자의 호소가 공식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사실상 없었다. 그래서 수사관들은 고문을 당연시까지 하며 범죄와 사건을 만들어내는데 거리낌없이 활용해왔다.
전직 고문경관들에 실형을 선고한 서울형사지법이 「고문을 통해 얻어진 사회안정과 국가안보는 무의미」하다는 결정을 내린 것으로 반인간·반문명의 관행이 더 이상 묵인되거나 용서받을 수 없음을 준엄하게 밝힌 것이다.
이번에 유죄로 인정된 사건은 박종철군 고문치사와 성고문과 더불어 5공시절의 3대인권 사건으로 5공 정권의 치부를 드러내고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혔다. 발생 5년5개월,재판회부 2년1개월이 걸린 곡절을 돌아보면 고문사건의 사법적 재단이 얼마나 어렵고 까다로운가를 실증적으로 보여준 셈이다.
처음 이 사건이 드러났을 때,검찰은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불기소처분을 내렸다. 가해자인 수사관들은 철저하게 강압을 부인했으며,심지어 고문사실이 있었다 하여도 국가를 위해 불가피하다는 의견까지 떠돌았다. 적반하장이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고문을 인정한 법원의 용단은 우리로 하여금 이제야 떳떳하게 문명사회를 지향할 수 있다는 신념을 일으키게 한다. 비록 중죄인이거나 국가사범이라 할지라도 문명사회에서 누릴 수 있는 기본인권은 마땅히 보장되고 존중받아야 한다. 전근대적인 가혹한 수법으로 자백을 강요하거나 유도하여 법정으로 몰고가는 악습은 이제 단호하게 근절되어야 할 것이다.
대공관계의 유공을 명분으로 삼아 고문을 합리화시키는 작태도 시대착오의 발상임을 뼈아프게 자성해야 할 줄 안다.
이번 사건에서 우리는 강인한 인권의식과 치밀한 변호가 고문추방의 첩경임을 깨닫게 되었다. 또한 성숙한 시민의식의 결집이야말로 인권의 보루임을 확인한 것은 큰 소득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도 고문의 재발이 없다고 장담하기 어렵다. 법원의 결정이 일벌백계의 효과를 거두리라 기대하지도 못한다. 고문의 악령이 다시는 고개를 못 들게 하기 위해서는 국민 모두가 감시자의 임무를 게을리 말아야 한다.
고문 판결의 의의를 되새기면서 우리는 도주와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어 법정구속은 하지 않는다는 미온적 자세엔 유감의 뜻을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피의자의 구속은 재빨리 하면서 유독 고문경관에게 관대해야 할 까닭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법적 집행의 형평이 흔들릴까 염려되기도 한다.
이 기회에 수사기관의 오만한 관행이 없어지고 일신의 새 바람을 일으켜 주기를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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