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혹행위로 얻어진 「안보」 무의미”/전근대적 관행 공권력 횡포 경종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부천서 권인숙씨 성고문사견과 함께 5공시절 최대인권사건의 하나였던 전 민청련 의장 김근태씨 고문사건과 관련,재판을 받아온 경찰관 4명에게 법원이 30일 징역 5∼2년씩의 실형을 선고함으로써 그 동안 논란을 빚어온 고문시비는 「경찰관들의 고문이 있었다」는 쪽으로 일단락됐다.
재판부는 『19차례의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피고인들이 법정에 꾸준히 출두하는 등 성실한 재판태도를 보이고 있어 이 시점에서 새삼스레 도주하거나 증거를 인멸할 우려는 없다고 판단돼 구속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고문을 자행,한 개인에게 인간적 모멸과 신체적 고통을 주었던 비인도적 범죄자들에 대한 단죄라고 하기에는 다소 미흡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어 앞으로 당사자인 김씨와 가족·재야단체 등으로부터 거센 비판이 쏟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은 당초 검찰이 「고문증거가 없다」고 고문경찰관들에게 무혐의 불기소처분을 내린 데다 완전 밀실에서 이루어진 범죄인만큼 목격자는 물론 물적 증거조차 없어 유·무죄 판단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이같은 고문범죄의 특수성 때문에 물고문·전기고문을 당했다는 김씨의 주장과 『뺨 한 대조차 때린 일이 없다』는 피고인들의 전면적 범행 부인이 법정에서 팽팽히 맞서왔다.
또 김씨에게 물고문·전기고문을 했다고 알려진 이근안 경감(52)이 잠적중이어서 공판진행에 더욱 큰 어려움을 겪었다.
법원에 의해 재정신청이 받아들여진 이후 2년 1개월 동안 재판부가 두 차례나 바뀌는 등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재판부는 결국 『김씨가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로 연행되는 과정에서 상당한 고문을 당한 사실이 인정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재판부는 그 동안 모든 증거자료들을 면밀히 검토하고 관련증인들의 진술을 토대로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 대한 현장검증까지 실시한 결과 「분명 고문이 있었다」는 심증을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부는 이날 『어떠한 중죄인이거나 아무리 고상한 명분이나 국가적 목적이 있다 하더라도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무시한 고문을 통해 얻어진 사회안정과 국가안보는 무의미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비록 그늘진 대공분야에서 오랜 기간 국가안보를 위해 일해온 피고인들이 수사업무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저지른 일이라 하더라도 역시 고문만은 용납될 수 없다』고 밝혀 「수사상 불가피하다」는 전근대적 수사관행이나 공권력의 횡포에 다시 한 번 경종을 울려주었다.
이번 판결이 대법원에 가서도 유죄로 확정될 경우 김씨는 85년 당시 서울대 민추위사건으로 선고받은 징역 5년의 확정판결에 대해 재심을 청구할 수도 있게 됐다.
또 현재 김씨가 국가를 상대로 제기해 소송계류중인 고문피해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소송도 김씨측에 유리한 쪽으로 결론지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고문기술자로 지명수배된 뒤 잠적,「안 잡나 못 잡나」하는 시비가 계속되고 있는 이 경감에 대해서도 수사기관이 더 이상 추적을 회피할 수는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홍윤오 기자>홍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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