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한 부정사건 처리를 놓고 엉뚱한 궁리나 지엽말단적 논의가 참으로 분분하다. 당정에서는 국민들의 성난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는 듯 의원직을 사퇴하면 불기소키로 방침을 멋대로 정하는가 하면,당사자들마저 사퇴권유에 반발하고 있다니 뻔뻔스럽기 짝이 없다. 법대로 처리하면 분명하면서도 간단한 일인데 또다시 슬그머니 과거의 처리 관례로 물줄기를 돌리려해서야 검은 돈을 만지는 이 사회의 구조적 부패풍조는 개선될 기회를 기약할 수가 없다.거듭 강조하거니와 지금은 명백한 부정을 더 이상 비껴가도록 잔꾀나 궁리할 때가 아니다. 법대로 엄정처리하는 것은 기본상식인 것이고 그 바탕 위에서 이 사회를 부정·부패로 멍들게 하는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마저 정부나 사회 각계와 국민들이 합심해 고치려 나설 중대한 시점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한두 가지 잘못을 통해 열 가지 교훈을 얻으려는 전향적 자세가 없고서는 이 상태로 21세기에 가더라도 이 사회가 부패의 탁류를 벗어나 발전할 길은 그만 막히고 말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따져볼 때 지금 이 순간은 온갖 부정부패의 온상이 되고 있는 「검은 돈」 주고 받기의 먹이사슬을 부수고 법적·제도적 장치마련에 정부와 온국민이 나서기 시작할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사실 이 사회에는 법망과 세금을 피하는 검은 돈이 깔려 있지 않은 곳이 없다. 이번에 말썽난 무역특계자금과 같은 정부나 민간조성의 각종 관리기금이 작년 한 해에만도 국가예산과 맞먹는 36조원이나 거둬졌고 그 중에서 27조원이 분명한 감시장치없이 방만하게 쓰여졌다고 한다. 또 각 기업이나 업소 및 개인이 변칙투기나 탈세 등으로 거둬들여 멋대로 쓰는 돈도 그 규모가 각종 관리기금수준에 못지 않다. 이같은 돈들이 지하경제를 이룩해 나라경제를 좀먹는가 하면 선거과열·투기·과소비는 물론이고 이 사회를 지탱하는 핵심조직과 기능을 두루 부패시켜 왔던 것이다.
검은 돈의 오랜 흐름은 어느새 선량들의 입에서마저 「관례」 소리를 예사로 내뱉게 만들었다. 국민들의 일상생활이나 경제활동은 물론이고 선거·행정·공무·교육부문 등에서마저 법과 질서나 도덕은 겉치레이고 사실은 「검은 돈」의 흐름을 타고서라야 매사가 비로소 작동되는 2중의 사회구조를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유전무죄」에다 음대가 아니라 억대이고,수십억을 선거에 쓰고도 본전을 뽑고,기업은 망해도 기업가는 부자라는 소리들이 나왔던 것이다.
검은 돈의 존재가 가능한 이유쯤이야 사실 누구나 안다. 구조적으로 실명제가 안 되어 돈의 행방을 쉽게 감출 수 있고,세제가 구멍이 뚫려 있는데다 징세당국의 추적에도 한계가 있으며,정·재계 등의 사회지도층일수록 비자금이 없고서는 아무일도 못하는 중증에 걸려 이중구조를 고쳐볼 용기를 못 내고 있고,그러다보니 사회의 모든 부문이 탁류에 휩쓸릴 수밖에 없었다.
결론은 이제 분명하다. 사건을 법대로 엄정처리하는 것을 기본바탕으로 해서 「검은 돈」으로 비롯된 부정부패의 구조적 문제까지 차제에 고쳐보려는 전향적·대승적 자세가 필요하다. 서기 2천년대를 지향하는 우리 사회의 목표는 그렇게 정해져야 하고 정부는 그렇게 끌어가야 한다. 그렇다면 정부와 국회가,정치지도자들이 먼저 솔선수범하는 모범을 보여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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