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의 기둥들인 대학과 국회의 부정사건을 지켜보며 온국민이 착잡한 심정에 빠져 있다. 이 사건들을 계속 캐들어간다면 거의 모든 국회의원,거의 모든 예체능계 교수들이 얽혀들게 될 것이므로 총체적 망신과 그로 인한 파국을 피하기 위해서는 결국 적당한 선에서 감자뿌리를 자르지 않을 수 없으리라고 많은 사람들은 전망하고 있다.그렇다면 잘라낸 감자뿌리에 얽혀 세상에 노출된 사람들은 자신들만 희생양이 되었다고 원통해 하고,뽑혀나오지 않은 뿌리에 달려 땅 속에 묻혀 있는 사람들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하는 것으로 이 사건들도 흘러가게 될까. 그래서는 안 될 것이다. 그래서는 안 되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이 문제들에 대해 폭넓고 끈질긴 논의를 해야 한다.
국회는 세 의원의 뇌물외유사건에 대해 나름대로 분주하게 대응하고 있다. 국회의장과 여야 대표의 사과,의원윤리강령 제정 논의,국조권 발동 주장,의원직 사퇴로 기소를 막으려는 움직임 등이 모두 국민을 납득시키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들은 이번 사건이 매우 중대한 사건이라는 인식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이한 것은 예체능계의 침묵이다. 그 많은 예체능계 교수들과 단체와 원로들이 모두 입을 다물고 있다. 서울대 음대생들이 이번 사건의 해명과 입시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대자보를 교정에 붙인 것 이외에 어떤 의견표시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많은 예체능계 교수들은 새벽에 전화를 받고 지정된 대학으로 심사하러 나가는 자신들의 처지를 일용고용직이나 서비스직에 비하며 자조해왔고,심사교수들에 대한 불신을 바탕으로 한 실기공동관리제를 비난해왔다.
그러나 그들의 대부분은 입시부정과 관련이 없었다 할지라도 동료심사위원들에 의해 저질러지고 있는 부정을 알고는 있었을 것이다. 그들이 교육자라면,또 이 나라의 문화예술에 참여하는 문화예술인이라면,이제 자조와 분노를 넘어 어떤 의견을 제시해야 한다.
예체능계 교수들의 개인레슨과 그로 인한 입시부정을 막기 위해 지난 80년 실기시험공동관리제를 채택했던 문교부는 그 후 10년 동안 새로운 형태의 담합과 부정에 관한 소문이 꼬리를 무는데도 관리를 게을리해왔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가장 손쉬운 예로 「실기점수 50% 반영」이라는 매우 이상적인 규정이 어떻게 악용되고,어떻게 어린 예체능 학도들의 진로를 왜곡시키고 있는지 뚜껑조차 열어보지 않았다.
『실기점수는 1백점 만점으로 채점되지만,내신성적+학력고사성적이 대개 8백50점 만점이므로 50 대 50의 비율에 따라 실기도 8백50점 만점으로 계산된다. 실기에서 20점을 더 주면 1백70점을 더 주는 결과가 된다. 성적이 나쁜 학생을 봐주려면 성적이 좋은 학생을 끌어내려야 하는데 만일 심사위원 한두 명이 우수한 학생에게 고의로 60점을 준다면 그 학생은 내신 1등급에 학력고사성적이 3백점에 가깝더라도 학력고사 1백10점짜리에게 밀려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한 음악교수는 「실기 50% 반영」을 낮춰야 한다고 학교와 문교부관계자에게 여러 차례 건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는 음악해석·테크닉·청각·이론 등 여러 부문을 열흘 이상 테스트하는 유럽의 음악학교 입시제도를 예로 들면서 고작 두 차례에 6∼7분 실기를 하는 우리나라 음대입시에서는 실기 20% 반영정도가 적당하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권위있고 신뢰받는 한 음악콩쿠르를 예로 들면서 『그 비결은 심사위원이 25명이나 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음악교수도 있다.
대입실기시험에서도 심사위원을 적어도 10명 이상으로 대폭 늘리고,몇 개 지정장소에서 여러 대학이 공동시험관리를 하자는 것이 그의 개선책이다.
문제는 이런 개인의견들을 한데 모아 스스로 자정의 틀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교한 씨줄 날줄로 잘 만들어진 의원윤리강령과 예체능계 실기관리제도는 잘 만들어진 법이 그 국민을 모독하거나 구속하지 않듯이 의원과 예체능계 교수들을 「도둑」으로 감시하려는 것이 아니다.
예체능계 전체가 기이한 침묵을 깨고 소리를 내야 한다. 교육부에 또 다른 입시개선책을 맡기고,일용 근로자처럼 불려나가 심사나 하겠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예체능계 대학입시가 부정으로 썩어가고,예체능교육이 돈을 물쓰듯 하는 계층에 의해 독점돼 간다는 것은 결국 이 나라의 문화예술이 대중의 사랑으로부터 외면당하는 무서운 사태의 시작임을 인식해야 한다.
국회와 대학의 문제해결은 스스로의 자정의지에 달려 있다. 정부가 사건수사를 축소하느냐 확대하느냐에 자신을 내맡기지 말아야 한다. 사건의 수사와 관계없이 국민의 판결은 이미 내려졌고,국민의 인내심은 한계에 이르렀음을 직시해야 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