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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여러분께/임철순 사회부차장(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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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여러분께/임철순 사회부차장(메아리)

입력
1991.01.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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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정치인들을 혐오하는 사람입니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마음 속 깊이로부터 경멸하고 있습니다. 이유야 물론 많지만 정치인들의 말,즉 목소리부터 저는 듣기가 싫습니다.우선 여러분이 즐겨 쓰는 전향적이라는 말­문자 그대로 「앞을 향한다」는 이 말은 「진취적·긍정적 자세」를 뜻하는 것 같으나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언어가 존재의 집이고 사상의 축적물이라는 점이 이 말에서는 무시되고 있습니다.

인간의 상상력,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낼 때의 조심성과 진통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즉물적이고 동물적인 말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국어사전에도 없는 이 말은 일본어의 전향에 적자 하나를 덧붙인 것에 불과합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후향적·측향적이라는 말을 만들어낼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은 또 결코 마음이 평정하지 못한 경우에도 명경지수라거나 『담담하다』고 군자같은 소리를 하고 있으며 왕조시대의 군주나 되는 것처럼 『부덕의 소치』라는 말을 흔히 합니다.

40대 기수론이 대두됐을 무렵 유진산씨는 구상유취하다고 말했습니다. 진산에 대한 정치적 평가는 다른 문제이지만 그 말은 사랑방 정치세대로서 한학의 소양을 갖춘 진산 자신의 언어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재민을 「나재민」이라고 읽는 사람까지 있는 요즘의 여러분에게는 겸허한 자기반성이 담기지 않은 부덕의 소치운운은 진산의 표현대로 구상유취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그 동안 숱하게 「백의종군」을 했고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당원의 잘못을 단호하게 단죄했지만 달라진 것은 별로 없습니다. 하도 거짓이 많고 과장이 심해 자기들끼리도 불편했던지 여러분은 드디어 「체중이 실린 말,안 실린 말」 따위의 구별까지 고안해냈습니다.

정치에는 외교적 둔사나 에둘러 표현하는 기교가 필요하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닙니다.

그러나 화장실에 가면서까지 그곳에 가야 하는 명분과 앞으로의 행동방향을 성명으로 발표해야 직성이 풀릴 것 같은 사람들로 보이는 우리의 정치인들은 실제행동과 유리된 위선과 교언으로 자신과 국민을 늘 속이고 우리의 언어를 왜곡·오염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역사에 단 한줄,아니 반줄의 기록 가치도 없어보이는 다툼을 여전히 일삼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왜 있는지를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생각이 대의정치 자체의 부정으로 이어지면 안 되겠지만 여러분의 명과 실이 다른 언동은 국민을 괴롭히고 성가시게 하고 있습니다.

부디 여러분의 언어부터 진실되게 가다듬어주기 바랍니다. 그리고 다음선거에서 두고보자고 국민들이 벼르고 있는 사실을 잘 깨달아 이제부터라도 달라져야 할 것입니다. 저의 부탁이 여러분의 표현대로 체중이 실린 말로 받아들여지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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