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잊혀졌지만 1차대전 때의 솜(Somme)전투는 그 참담한 살육과 소모전으로 전사에 남아 있다. 연합군이 하루에 최고 1만9천명의 전사자와 4만1천명의 부상자를 냈을 정도였으니 엄청난 소모전의 규모를 짐작할 만하다. 솜전투가 그렇게 희생자를 많이 냈던 것은 전투 쌍방이 첫 등장한 독가스와 함께 전차,항공기 등 신병기를 두루 동원한 지독한 참호전이었기 때문이었다. 5개월에 걸친 그 전투에서 영국·프랑스군은 90만,독일군은 60만의 사상자를 내면서도 승패가 가려지지 않았었다. ◆그런데 걸프전을 앞두고 서구의 군사전략가들은 다국적군과 이라크간의 싸움이 지상전으로 확대,장기화될 경우 솜전투와 유사한 엄청난 살육·소모전이 되지 않을까 가장 걱정했었다. 1차대전 때와는 비교가 안 되는 첨단병기에 이라크가 엄청나게 비축해둔 화학무기,그리고 사막 땅 속에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구축해둔 참호 때문에 희생자가 많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었다. ◆걸프전은 당초의 단기전 기대와는 달리 차츰 장기화로 바뀌어 지상전이 임박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견고한 지하요새 안에 숨어 있는 이라크측의 두더지작전 때문에 항공 및 미사일공격만으로는 그 성과에 한계가 있어 전쟁을 지상전으로 확대할 수밖에 없다는 기미인 것이다. 그런데 지상전이 전개될 경우 가장 두려운 존재가 바로 화학무기이다. 독가스는 엄청난 살상력을 지녀 원자력무기에 버금가는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라크는 타분가스,머스터드가스 등 만3천톤의 화학무기를 이미 비축,계산상으로는 1백억의 사람마저 살상이 가능하다. 이처럼 독가스는 위력이 크면서도 제조비용은 적게 먹혀 후진국의 원폭으로 곧잘 불린다. 후진국들은 핵선진국의 원폭에 대비한 최후의 배수진으로 화학무기 사용을 공언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1차대전 때가 아니다. 화학무기가 국지적으로만 사용가능한 게 아니라 항공기나 미사일발사를 통해 엄청나게 확산될 수가 있는 것이다. 솜전투와 같은 대량학살의 지상전투가 전개되기 전에 전쟁이 끝났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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