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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로 바나나를 만들다니…”/곽수일 서울대 경영대교수(경제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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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로 바나나를 만들다니…”/곽수일 서울대 경영대교수(경제진단)

입력
1991.0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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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환경 변화엔 감정빼고 냉정히오래 전에 보았던 「왕과 나」(King and I)라는 영화가 기억난다. 이 영화속 에는 당시까지만 해도 미개발국이던 태국의 왕이 영국인 고문관을 왕궁으로 초대하여 앞선 문물을 받아들이고 개화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이 묘사되고 있다. 비록 영화 속의 내용이라 하더라도 이처럼 선진국의 문물을 수용하는 등 국제정세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한 태국은 역사상 한 번도 다른 나라의 식민지가 되지 않고 지금까지 발전하여 왔다.

반면에 외침을 막고 주권을 지킨다는 명분하에 강력한 쇄국정책을 폈던 조선왕조는 결과적으로는 강대국의 틈바구니 속에서 온갖 시련을 겪다가 끝내는 일본의 식민지가 되고 말았다. 주권을 수호하겠다는 의지는 훌륭했지만 국제적인 변화의 조류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결과라 하겠다.

그런데 오늘날 현안이 되고 있는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이나 선진국들의 통상압력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태도가 바로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대원군의 쇄국정책을 펴던 때와 비슷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 즉 그로부터 나타나게 될 득실을 냉철하게 따져보고 그 대응책을 준비하기보다는,단지 감정적인 차원에서 그네들의 요구에 저항만 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우루과이라운드협상의 경우를 생각하여 보자. 우루과이라운드협상이란 것이 결국은 이해당사국들이 모여서 국제교역에 있어서 새로운 게임의 규칙(International Rule of Game)을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그런데 국제교역에 있어서는 선진국과 후진국의 이해관계가 각기 다르고,같은 선진국끼리 혹은 같은 후진국끼리도 각자의 경제발전 단계나 주력산업이 무엇이냐에 따라 이해관계가 서로 엇갈리므로 합의에 도달하기까지는 많은 진통이 따르게 된다. 그러나 일단 합의가 이루어지면 그때부터는 이것은 누구든지 따라야 할 게임의 규칙이 된다. 누구든 규칙을 지키지 않고서는 국제교역에 참가할 수 없을 것이며,오늘날과 같이 세계가 하나의 경제,하나의 시장이 되어가는 상황에서 국제교역에서 따돌림을 당한다는 것은 곧 그 나라 경제의 파탄을 의미할 뿐이다. 우리 입장에서 보다 현명한 선택은 새로운 국제적 게임의 규칙을 만드는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최대한 우리의 이익이 관철되도록 노력하고,그리고 나서는 우리 스스로 게임의 규칙을 공정히 준수하는 것이라 하겠다.

외국인들이 우리가 국제적 게임의 규칙을 지키지 않는다고 하면서 자주 드는 예가 일부 농가의 바나나재배에 관한 것이다. 이들의 주장에 의하면 한국만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비싼 원유를 들여다가 난방을 하여 온실에서 바나나를 재배하는 국가라는 것이다. 즉 열대국가에서는 그렇게 싸고 남아 돌아가는 바나나를 비싼 석유를 가지고 생산하고 있으나 이것은 국제적 게임 규칙으로 보아 합당치 못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우리 국민의 경제의식 속에서 무엇이든 우리 식대로 하면 된다는 편협되고 폐쇄적인 사고를 떨쳐버리고,세계가 받아들이는 국제적 게임의 규칙을 준수하면서 그 속에서 우리의 농업이나 서비스 등 취약분야를 보호하기 위한 합리적 대책을 강구하도록 해야 하겠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최근의 국제통상문제도 반 이상이 우리 자신의 문제,즉 국민경제의식의 전환이라고 하는 국내문제라고 하겠다.

국민경제의식의 국제화와 아울러 기업활동도 진정한 의미에서 국제화를 지향해야 하겠다. 이제까지의 우리 기업을 보면 수출도 하고 해외지사도 설치하는 등 국제화의 측면에서 상당한 발전이 있었던 것같이 보이나,실제로는 아직도 경제개방의 물결을 헤쳐 나가기에는 힘에 겨운 초보적 단계에 그치고 있는 듯하다. 예를 들어 최근 우리 경제의 개방과 더불어 외국제품의 수입이 본격화되고 있는데,이들 외국제품들의 시장침투에 대해 국내기업들이 사전에 적절한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이제서야 뒤늦게 허둥대는 꼴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를 보면 우리 기업들이 그 동안 해외시장에서 제한적으로는 외국기업들과 경쟁해 보기도 했었지만,국내시장을 포함하여 세계시장에서 전세계의 기업들과 경쟁하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국제화에는 아직 이르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최근의 국제정세는 예측을 불허할 만큼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만리 밖 페르시아만에서의 전쟁이 우리 경제의 명암을 엇갈리게 하고 있다. 이 경우 걸프전쟁은 국제외교의 새로운 게임규칙을 만드는 과정이라 하겠다. 따라서 걸프전쟁의 경우에도 우리가 눈앞의 이해만 따져서 행동할 것이 아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걸프전쟁이 끝났을 때 각국은 전쟁의 손익계산서를 작성하여 이것에 근거하여 이해득실을 따지게 될 것이고 그때 우리가 최선의 이익을 얻기 위해 현재 무엇을 하여야 할지 생각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고 눈앞의 이해만을 생각하여 석유로 바나나를 만들 듯이 편협된 사고만을 고집한다면 이는 가히 신쇄국정책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는 우리 국민과 기업이 의식의 국제화를 생각하고,우리 모두가 새로운 게임규칙이 각자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이에 어떻게 대응하여야 할 것인가를 강구하여야만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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