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머물고 있는 텔아비브 힐튼호텔에 피란해 있는 이스라엘인들 가운데는 유난히 노인들이 많았다. 22일 저녁 미사일공격 때 호텔 대피소에서 한 노인과 얘기를 나누다가 『아,그랬었구나』라고 기자의 무딘 감각을 통탄해야 했다.그 노인은 나치의 독가스지옥 아우슈비츠의 생존자였다. 폴란드 태생인 76세의 노인은 지난 45년 아우슈비츠 가스실에서 다섯 살된 외동딸을 잃고,부부만 살아남았다고 했다.
독가스는 노인에게 아직도 생생한 악몽으로 남아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진다』고 회상했다. 그래서 공기보다 무거운 독가스 위험이 적을 듯한 높은 호텔로 부부가 피신했다는 것이다. 호텔의 다른 노인들 중 독가스 지옥 생존자가 또 있는지도 모르지만,유태 노인들의 공포는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면 공습대피소에서 이 노인들의 행동은 유별난 데가 있었다. 한순간도 방독면을 벗지 않는 것은 물론,방독면을 벗고 다니는 기자들을 나무랐다. 해군함정 근무시절 화학전훈련에 익숙한 기자에게 굳이 마스크 쓰는 것을 도와주려는 노인들도 있었다. 평상시에도 호텔방 출입문 아래를 물적신 타월로 막아 놓은 채 좀체 밖으로 나오지도 않았다.
노인은 『죽는다는 두려움보다 악몽이 더 괴롭다』고 말했다. 이 노인들은 이번 전쟁의 가장 큰 희생자인 무고한 이라크 국민들에 못지않은 「정치적 희생자」들이었다. 대피소에서 공포에 질려 흐느끼는 할머니들,전통가요를 합창하며 공포를 쫓는 할아버지들의 모습이 새삼 애처로울 지경이다.
지금 독가스 공격을 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는 후세인은 히틀러 못지않은 악인으로 규정되고 있다.
그러나 그것으로 그만인가.
후세인에게 독가스 무기를 쥐어준 것은 이슬람의 최강국 이란의 대이라크전 승리를 두려워한 서방 강대국들이었다. 그리고는 지금에 와서 후세인이 「악인」임을 강조하기 위해 독가스 위협을 과대 포장해 왔다. 벤·엘리사르 이스라엘의회 국방위원장도 이를 공개비난하고 있다.
결국 국익다툼을 위해 유태 노인들의 「독가스 악몽」을 되살려 준 모든 전쟁 가담국이 죄악을 저지르고 있는 셈이다.
<이 기사는 이스라엘 당국의 검열을 거친 것입니다.> <텔아비브에서>텔아비브에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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