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군 전투부대의 페르시아만 파견문제가 산발적으로 신문에 보도되자 그렇지 않아도 긴장 속에 중동사태를 지켜보고 있는 국민들은 더욱 불안한 기색이다. 이 문제가 처음 제기된 것은 지난 8일 노태우 대통령의 연두기자회견 때였다.파병여부에 대한 기자질문에 노 대통령은 『요청받은 적도 없고 검토한 바도 없다』는 한마디로 잘라말함으로써 다른 추측의 여운을 남기지 않았다.
그러나 그로부터 3일 뒤인 11일 이종구 국방장관은 『현재까지 그 같은 요청을 받은 적도 검토한 적도 없다』고 전제하면서도 『그러나 미국과 다국적군이 한국군 전투부대 파병을 요청해올 경우 검토해서 파병하지 않음으로 해서 현저한 국가적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판단될 경우에는 파병을 결정하겠다』고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언뜻보면 원론적이고,상식적인 것으로 들리는 이 장관의 이 발언이 「전투부대 파병검토 시사」로 언론에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국방부는 다음날 『만약 사태가 악화될 경우 유엔참전국에서 강력하게 요청할 때에는 안보와 국익의 손익을 판단해 검토해볼 문제라고 말한 것』이라고 극히 상식적인 수준으로 후퇴해버렸다.
논란과 의심의 여지를 없애려 했다면 파병문제는 노 대통령이 언급한 선에서 끊었어야 했는데 의도적으로 했든 무의식적으로 했든 꼬리를 달다보니 확대유추해석이 되어버린 셈이다.
사실 60년대의 월남파병 과정을 기억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의료진 파견을 공식발표하면서 던진 이 국방의 발언에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월남전 당시 처음에는 의무중대·태권도 교관단·건설지원단 등 비전투부대를 파견하다가 나중에는 미국의 압력에 못이겨 결국 청룡 맹호 백마 등 전투부대를 파견하고 말았던 것이다.
사실 이 국방의 발언에 이어 미국이 페르시아만 파병을 요청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돌고 있고 한미경제협의회에 참석차 내한한 리처드·매코맥 미 국무차관도 15일 기자회견에서 『현재까지 한국에 대해 군의료진 파견·주둔비 지원 이외에는 요청하지 않았으나 상황이 변하면 추가요청을 하게 될 것』이라고 전투병력 파견요청을 시사했다.
이처럼 계속 번지는 파병설에 대해 외무부와 주한 미국 대사관은 16일 다같이 공식적으로 부인하고 나섰지만 앞으로 페르시아만사태의 추이에 따라 얼마든지 재연될 소지를 안고 있다.
상식적으로 보아 월남전과 중동전은 정글과 사막이 다른 것처럼 그 시대적 배경이나 전쟁 자체의 성격에 차이가 많다. 장기전으로 질질 끌었던 월남전과는 대조적으로 페르시아만전쟁은 아직 발발하지도 않았지만 터진다 하더라도 속전속결이 단기전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전쟁이 중동 전역으로 확대되어 장기화할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지만 파병할 시간적 여유도 없을 정도로 금방 끝날 가능성이 더 크다는 관점에서도 벌써부터 파병문제를 논의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사태가 예상 외로 악화되어 당사국으로부터 공식요청이 오면 그때 가서 국민적 논의에 부쳐도 늦지 않다. 불필요한 논의를 성급하게 앞당겨 불안을 자초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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