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년 현지여인과 관습·이념 극복하며 결혼/내집마련꿈에 다시 해외근무… 슬하에 형제/부부함께 동료들 귀국 도와『사랑하는 아내를 전쟁의 불구덩이에 남겨두고 혼자만 빠져나갈 수는 없습니다. 이해해 주십시오』
전운이 임박한 이라크에서 한국인들은 속속 철수하고 있지만 현대건설 바그다드 사업본부 직원 박휴중씨(36)는 지난14일 본사와 마지막 통화를 한 뒤 소식이 끊겼다. 박씨는 이라크에 자진해서 남은 한국인이 된 것이다.
지난 84년 이라크 여인 모나·케일리씨(35)와 결혼,민우(6)신우(4)형제와 함께 사랑의 둥지를 틀었던 박씨는 아내와 함께 전가족이 생사를 같이하기로 선택했다.
케일리씨는 박씨와의 결혼후에도 고향방문과 이라크 현지취업 등의 편의를 위해 이라크국적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전시 국민총동원령이 내려진 이라크를 떠날 수 없게 돼있다.
박씨는 본사와 현지 동료들이『혼자라도 빠져 나온 뒤 후일을 기약하라』고 설득했으나 뿌리치고 현지 사정에 밝은 부인과 함께 다른 직원들의 철수를 끝까지 돌봐준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83년 이라크에 파견된 박씨는 당시 현대건설이 맡은 공사의 발주처 감독관이던 모나양과 만나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외국인과의 결혼을 금지하고 있는 이라크의 관습법과 이념·종교의 차이 때문에 이들은 엄청난 시련을 겪어야 했다.
박씨는 아랍어로 코란을 외워 법정에서 모슬렘 확인증을 받아야했고 이라크 비밀경찰로부터 뒷 조사를 당해야했으며,부인은 정부에서 대줬던 양육·교육비 일체를 반환하고 벌금까지 문 뒤 끝내는 가문에서 파문당했다.
갖은 난관을 헤치고 이들은 마침내 84년 4월7일 서울로 와 용산구 한남동 이슬람사원에서 화촉을 밝혔다.
결혼후 현대건설 본사에서 6개월여 동안 함께 근무했던 박씨부부는 서울에 내집을 마련하기 위해 다시 해외근무를 자원,이라크로 갔다.
이라크에서도 알무스에 근무하는 박씨와 이폭지점 총무과에서 일하는 부인은 반년 가까이 떨어져 지내며 기숙사생활을 하다가 현대측의 배려로 바그다드 사업본부에 함께 자리를 잡았다.
부인이 맡은 일은 전에 감독관으로서 현대를 닥달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현지 발주처 관공서와의 로비업무. 외국인과의 결혼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이라크 관리들의 냉대에도 불구하고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며 스스로 『나는 현대사람』이라고 항상 자랑했다.
즐거움보다는 어려움이 더 많은 생활이었지만 이들은 언제나 한국인과 이라크인의 융화를 위해 궂은일을 도맡아 바그다드사업본부의 보배와 같은 존재가 됐다.
현지에서 형제를 낳은 박씨 부부는 이름까지 아랍어로「누구냐」는 뜻인 민우와 「무엇이냐」는 뜻의 신우로 지었다.
혼혈아를 한번도 보지못한 이라크사람들이 아이들을 보고 퍼부어대는 질문공세에서 힌트를 얻은 다국적 작명이었다.
박씨 부부와 현지에서 같이 근무했던 현대 직원들은 이들은 늘『서울에 자그마한 마당이 있는 집을 장만한 뒤 손님들을 불러 부인의 두부찌개를 대접하는게 소원』이라고 말했었다고 전하고 있다.
「사랑을 훔친 알리바바」로 통하는 박씨와 가족의 소식을 들은 현대 직원들은 그들의 안전귀환을 위해 전 사원이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현대건설 대책본부측도『박씨와의 연락을 계속 시도하고 있다』며 『우리 정부와 이라크당국에 전 가족의 귀환을 청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신윤석 기자>신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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