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안정필요 이용 무력사용 진압지난 13일 발생한 소련 리투아니아 공화국의 유혈사태는 일단 보수파와 급진개혁파간의 첨예한 대립 속에서 비롯된 우발적인 사건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유혈사태가 일어난 곳이 이미 연방과의 분리독립을 선언하고 독자노선을 걸어왔던 리투아니아공이라는 점과 지난 연말 제4차 인민대표대회에서 보수파의 대약진이 눈에 띄게 나타난 점,셰바르드나제 외무장관의 「독재」 등장 경고 및 사임 등으로 미루어 볼 때 보수파들의 고의적인 계획적 도발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소련군의 이 같은 무차별 발포가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연방위원회에서 발트3국의 상황을 조사키 위한 대표단을 파견키로 동의한 지 12시간만에 나왔다는 점에서 이런 추측이 더욱 신빙성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보수파들은 고르바초프가 「제2의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을 추진키 위해서는 정치안정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각 공화국의 분리독립운동을 막아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이용,차제에 눈엣 가시같은 존재인 리투아니아공을 무력으로 진압하려는 의도를 내보인 것이다.
즉 보수파들은 지난 6년간 보수·개혁간의 세력다툼에서 균형적인 입장을 취하던 고르바초프를 이번 유혈사태로 빚어진 위기국면에서 자파 쪽으로 선회토록 하는 동시에 개혁파 쪽의 민주화 주장에 쐐기를 박는다는 승부수를 던지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고르바초프는 자신의 양팔이었던 셰바르드나제와 야코블레프가 정치일선에서 퇴진해 있는 상태에다 옐친 등 급진개혁파들마저 자신의 정책에 반기를 들고 있는 상황에서 보수파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는 입장에 놓이게 됐다.
급진개혁파는 상황이 이쯤되자 자신들의 입지는 물론 그 동안 쌓아놓은 정치민주화마저 일거에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
급진개혁파로서는 리투아니아공사태가 결코 「강건너 불」이 아닌 자신들의 당면문제임을 인식,발트3국과 러시아공 등을 중심으로 보수파 견제를 위한 발빠른 단결을 보이고 있다.
옐친이 직접 에스토니아공으로 가 발트3국 최고지도자들과 회동,유엔에 현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채택하는 한편 소 연방군의 폭력사용을 강력히 비난하고 나선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이다.
또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시에서도 폭력반대시위가 벌어졌으며 일부에서는 러시아공 최고회의 소집을 강력히 요청하는 등 급진개혁파들이 전례없는 강경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울러 미국과 나토 등 서방국가들의 비난 속에 자칫하면 동서간의 데탕트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리투아니아공은 소련내 15개 공화국중 가장 열렬히 연방탈퇴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현 사태가 악화되면 대규모 유혈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경우 서방의 대소 원조가 중단되고 동서 긴장완화에 제동이 걸릴 수 있으며 일부 공화국에까지 현사태가 번져 소 연방이 내전에 돌입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고르바초프가 지금까지의 모든 개혁정책을 포기하고 당장 보수파와 손을 잡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다만 정치안정을 위한 「독재적 수단」을 어느 정도 제한된 범위에서 사용할지는 미지수이다.<이장훈 기자>이장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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