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후 일본 총리가 서울공항에 내리던 9일 상오 파고다공원에서는 대한민국독립유공자유족회,3·1여성동지회 등의 방한 반대집회가 열렸다.『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생체실험,정신대 등의 만행사실을 인정하고 원폭피해자,사할린 억류동포들에게 책임있는 조치를 취하라』고 회원들은 외쳤다.
그러나 공원 앞을 지나는 시민들은 강추위에 주머니에서 손빼기도 귀찮은 듯 이들이 나눠주는 성명서를 받아 읽는데조차 인색했다.
『재일동포의 완전한 법적 지위를 보장하라』
눈물을 글썽이며 절규하는 칠순 할머니의 목소리는 이내 가이후 총리의 공원방문에 대비한 제설작업,삽질과 망치질소리에 묻혀 스러졌다.
7∼8일에 공원 앞에서 잇달아 열렸던 태평양전쟁 희생자유족회와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의 시위 때도 시민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인류역사의 가장 추악한 범죄인 정신대문제를 일본 교과서에 수록할 것을 요구하는 피켓을 보면서 설경에 사진을 찍으러온 청소년들은 『정신대가 뭐지』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리기까지 했다.
한국인들의 반대열기가 어느 정도인지 취재하려고 나왔던 일본 기자는 『반일감정은 이 정도 사람들에게밖에 없느냐』며 『일제의 만행은 한국에서도 잘 가르치지 않는 모양』이라고 꼬집었다.
파고다공원을 휴식처 삼아 모이는 노인들은 반응없는 집회가 민망하고 「손님맞이 대청소」가 못마땅한 듯 9일 낮부터 공원을 떠나기 시작했다. 경찰관들이 『할아버지 내일 오전에는 공원에 못 들어오시니까 오후에나 나오세요』라고 당부했으나 노인들은 한결같이 입을 굳게 다문 채 대꾸하지 않았다.
가해민족이 역사를 은폐·왜곡하고 피해민족은 역사를 망각한다면 과연 두 민족의 관계는 바로잡아질 것인가.
10일 파고다공원을 찾을 일본 총리에게 아우슈비츠를 방문한 서독 브란트 수상의 눈물을 기대하진 않는다.
다만 그가 독립선언비 앞에 형식적인 헌화를 하는가,그 뒤편에 부조된 일제 경찰의 조선인 학살장면의 의미까지 되새기는가를 냉정히 지켜볼 책임은 우리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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