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서의 전리품이란 으레이 기는 쪽의 몫이다. 전시 국제법상으로도 전투결과적으로부터 압수 또는 압류와 동시에 교전국에 소유권 취득의 효과가 발생하는 노획물을 일컫는다. 쉽게는 파워게임에서 이긴 자가 즐기는 싹쓸이의 만만한 대상쯤으로 그걸 생각하면 될 것이다.그런데 그 전리품이 승자의 것이 아니라 거꾸로 패자의 차지가 되고 말았다는 정설이 나왔다. 뭔가 분명 잘못되었거나 아니면 세상이 온통 달라진 탓일 것이다.
그렇다. 세계의 기류가 변했고 전리품의 판정기준도 어제와는 너무나 달라졌다. 새해 벽두 지면을 장식하는 저명학자나 미래학자들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적어도 피부로는 우리 모두가 달라진 세상을 느끼며 살고 있는 것이다.
2차대전에서 이긴건 미국·소련 등의 연합국이고 진건 일본·독일 등 추축국인 게 확실하다. 그런데 오늘날 왜 미국은 재정·무역적자에 허덕이고 있고,소련은 경제가 파탄에 이르러 한국과의 경협마저 조기해결을 요청하고 있는 것인가. 반대로 일본은 세계경제를 리드하고 있고 독일은 대망의 통일을 이룩한 뒤 유럽의 맹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지난해 종전 45주년을 맞으면서부터 2차대전의 전리품은 결국은 패전국들 차지가 되고 말았다는 정설이 나오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전후 반세기에 이르는 동안의 변모는 이처럼 전리품의 향방에서 보듯 실로 엄청나다. 그리고 전리품문제도 2차대전뿐 아니라 전후의 냉전 등도 끼여있어 다분히 복합적이기도 하다.
먼저 2차대전 후 세계가 함께 치른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이었던 냉전의 몫부터 따져보자. 후쿠야마라는 일본계 미국학자가 「역사의 종언」이라고 표현했을 정도로 민주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간의 체제대결은 민주자본주의의 일방적 승리로 끝났다. 그래서 비록 대전에선 이겼으나 냉전에서 참패한 소련이 조락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나,대전에선 패했지만 냉전에선 이긴 일본·독일이 미국을 앞질러 번영을 구가하고 있는 게 두루 납득이 가게 된다.
이같은 전리품 향방의 결정요인은 결과적으로 서독에 의한 공산동독의 흡수통일을 가능케도 했고,월맹이 통일전쟁에서는 이겼으나 경제적으로 몰락하게 되는 결과도 가져왔다.
다음은 대전과 냉전에서 두루 이긴 미국이나 영국 등 서방선진국의 위상을 짚어볼 차례이다. 이들 나라가 대전 후 한때 번영을 구가했던 것은 당연하다쳐도 요즘 와서 예전같지가 못하고 불황에 빠져드는 것은 무슨 탓인가는 또다른 문제가 제기된다.
결국은 민주자본주의라도 모두에게 똑같은 몫을 보장하는 게 못 되고 국가별 능력과 기강에 따라 엄청난 몫의 변화를 초래한다는 또다른 결정적 요인이 도출되기에 이르는 것이다.
유사 이래 열강의 틈에 낀 우리에게 약소국의 한을 맺히게 했던 「지정학의 시대」는 냉전종식과 함께 이제 끝나간다. 세계는 양대진영 대결에서 북미·태평양·EC의 권역으로 나뉘고,권역내에서의 「일국주의」로까지 줄달음친다. 미래학자 앨빈·토플러가 「권력이동」이라는 근저에서 오늘의 진정한 권력은 물리력부의 단계를 거쳐 지식으로 이동된다고 지적,창의와 지성의 시대도래를 예고한다.
아울러 그는 냉전체제 붕괴로 명백한 세계적 권력구조가 없어진 세계는 어제의 동지가 적이 될 수 있는 혼란의 시대로 빠질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이같은 혼돈의 시대에서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되어 진정한 전리품을 차지하게 되는 것일까.
결국 창조적 지식축적을 가능케 하는 교육제도,확고한 근로의식,그같은 지식과 의식으로 체질이 강화된 경쟁력있는 제조업,과소비를 삼가는 저축 등의 국가적 기강과 능력이 더욱 가차없이 요구되는 「지경학의 대결시대」로 세계는 줄달음치고 있는 것이다.
나날이 정치적 혼돈과 리더십의 부재,경제적 체질개선이나 국가적 기강회복이 논의되고 있는 우리 사회이다. 그러면서도 막연히 민주화만 이루면 만사형통이고,무슨 짓을 해서라도 권력을 계속 잡고 볼 일이고,무슨 수를 쓰더라도 돈만 벌어 기분껏 쓰면 그만이고,기술을 되뇌면서도 교육은 황폐화의 길을 걷고만 있다.
어찌보면 우리 사회는 아직도 냉전시절의 미몽에 사로잡혀 있는 것만 같다. 이제는 민주 대 공산의 단순선택차원이 아니라 민주라도 국민적 절제와 확고한 리더십이 두루 갖춰져야 하고,자본주의라지만 창의·근면·분배를 갖춰야만 나라끼리의 가차없는 「지경학의 대결」에서 살아남아 전리품도 차지할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올해는 이같은 시대적 변화를 우리 사회가 수용하고 체질을 가꿔나갈 수 있는 시험기로 진입하는 시기로 그 의미가 남다르다. 지자제의 첫 실시는 누구나 참여를 통해 창의적 민주주의의 풀뿌리를 착근시킬 호기이다.
또 사회에 만연한 체질개선과 세대교체의 목소리는 대안없는 대결구조 조장을 통해 욕심만 채우려는 냉전시대의 논리와 사고를 이 땅에서 몰아낼 바탕을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은 엄청나게 달라지고 있고,우리의 젊은 세대들은 겁없이 자란다. 그들에게 진짜 전리품을 안겨줘야 할 오늘의 기성세대는 정말 세상 무서운 줄 알고 처신하는,땀 흘리는 한 해를 보내어야 할 것만 같다.<논설위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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