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임기만료… 「포스트 가이후」 누가 될까/다케시타 재기·네오 뉴리더들도 거명/아베 전 간사장 건강악화 도전 미지수새해벽두부터 일본정계에 차기 총리자리를 놓고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포스트 가이후(해부) 승부의 해」(아사히신문)「5월 정변설,가이후 언제까지 갈 것인가」(요미우리신문) 등 정치면 기사의 제목들만 일별해도 제2차 내각이 출범한 지 며칠 되지 않는 가이후 정권의 앞날은 불안해보인다. 올 가을(10월말)로 집권 자민당 총재 및 총리의 임기가 끝나게 돼 있어 신문들이 정국기상도를 미리 점쳐보는 것인데 포스트 가이후의 선두주자가 없어 흥미를 더해준다.
자민당의 최대파벌이며 가이후 총리의 버팀목 역할을 해주는 다케시타(죽하등)파에 특별한 후보가 없어 오는 10월말까지는 현재의 체제로 가자는 것이 실권자 가네마루(김환신) 전 부총리와 다케시타 전 총리의 의중이다. 그러나 약체로 보이는 가이후를 나무에서 떨어뜨리려는 정적들의 공작이 본격화할 것은 불을 보듯 한 사실이어서 아무도 앞날을 예측할 수 없다.「5월 정변설」이란 것도 정적들이 퍼뜨리는 공작의 하나인 것이다.
조기정권교체를 요구하는 세력들은 우선 그의 정치적 지도력 부재,둘째 지지율 저하를 이유로 조기경선을 획책하고 있다. 와타나베(도변)파의 한 중견의원은 오는 5월 연휴 전후에 정변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을 정도다. 지난해 자위대 해외 파병을 목적으로 한 유엔평화협력법안이 중의원 단계에서 폐기됐을 때부터 일어난 인책론은 「가이후 지도력의 한계」를 이유로 그가 올라가 있는 나무를 흔들어댔었다. 또 한때는 역대 3번째 인기를 구가하던 가이후 정권의 지지율이 자위대파동 이후 30%(산케이신문 최근조사)까지 곤두박질친 것도 좋은 소재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그 배경에는 가네마루오자와(소택일랑·당간사장)라인의 독재에 대한 반발이 숨어 있다. 자민당내 반다케시타파에서는 가네마루오자와라인을 일본판 차우셰스쿠라고까지 비난할 정도이다.
그렇지만 다케시타파는 「가이후 속투」를 공식화하고 있다. 오자와 간사장은 구랍 30일의 회견에서 『기이후 총리가 임기까지 눌러 있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면서 『당내의 지지율이 높으면 재선도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가이후 총리가 대과가 없고 약체파벌 출신인 데다 성품상 「큰일」을 저지를 인물이 아니라는 점을 높이 사 그의 속투를 희망하는 층도 있다.
그러면 포스트 가이후를 노리는 후보는 누구이며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가.
구랍 26일 밤 각 파벌 중견간부들이 모여 내각개편에 대한 의견교환을 한 뒤 포스트 가이후가 화제가 됐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는 각 파벌의 회장인 아베·신타로(안배진태랑·66) 다케시타·노보루(66) 미야자와·기이치(궁택희일·71) 와타나베·미치오(도변미지웅·67) 등 이른바 다이쇼(대정) 세대들이 우선적으로 거명됐다.
그 다음으로 쇼와(소화) 10단위 세대인 오자와 간사장(48),하시모토(교본용태랑·53) 태장상,아베파의 간판 오쓰카(대총박·53) 의원에 이어 작가 출신의 국수파 이시하라(석원신태랑·58) 의원의 이름까지 입에 올랐다.
그러나 쇼와 10년 이후 출생한 젊은 그룹은 차기의 차기를 노리는 네오 뉴리더들이어서 이번 총재선거에는 입후보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각 파벌 총수 4명이 가장 유력한 도전자들인 셈이다.
그 중에서도 자타가 공인하는 유력후보자는 아베 전 간사장. 89년 5월 「총담관결석」이란 병으로 수술을 받은 그는 집요한 총리도전 의욕에 불타고 있지만 건강이 허락되지 않아 많은 일본인들이 애석해 하고 있다. 담석이란 공식적으로 밝히는 병명일 뿐 실제는 치유가 불가능한 병임이 공공연한 비밀로 돼 있다. 그와 막역한 사이인 다케시타 전 총리도 『나만 총리를 하고 아베가 못 한다는 것은 안 될 일』이라며 아베를 적극 지지하고 있지만 수술입원재입원을 되풀이하고 있는 그의 건강상태로는 도전기회를 갖기 어려우리라는 것이 지배적인 전망인 것 같다.
햄릿의 심경으로 비견되는 미야자와 전 부총리와 와타나베 전 정조회장은 리크루트사건에 연루됐다는 낙인 때문에 명예회복에 부심하고 있지만 가이후 총리의 견제작전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관심거리이다. 지난 연말개각 때 리크루트사건과 록히드사건 관련자는 입각시키지 않겠다고 거듭 목소리를 높여왔고 그 방침을 관철한 가이후 총리의 내심은 이 두 정적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별다른 위협이 될 만한 후보가 없다는 것이 피상적인 결론이지만,그런 상식론을 용납하지 않는 것이 일본 정치의 묘미여서 91년 일본 정국은 더욱 흥미롭다.<동경=문창재 특파원>동경=문창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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