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행동 지적 “재수없다” 반발/부모에도 친구 대하 듯/“지가 뭔데” “잘났어 정말” 선생님도 무시/예의대신 눈치·요령만교직생활 4년째인 서울 K국교 김 모 교사(27·여)는 4학년 학급반 아이들의 당돌하고 버릇없는 행동에 깜짝깜짝 놀라거나 속상해 울고 싶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라고 말한다. 한눈파는 아이를 불러내 야단치고 들여보낼라치면 돌아서면서 『지가 뭔데』 하는가 하면 수업시간에 『야 심하다 심해』 『잘났어 정말』 따위의 TV에서 배운 유행어가 자주 튀어나온다.
그러면 교실은 금방 코미디극장이 돼 버려 수업분위기가 잡히지 않는다.
어린이들은 선생님을 어려워하지 않고 있으며 어른에 대한 기본적 공경심과 예절,존대법을 모르고 있다.
어린이 걱정 상담실을 운영하는 서울 장위국교 차원재 교장(57)에 의하면 연간 1천건이 넘는 상담전화중 어린이들이 『××학교 ×××입니다』하고 자신을 먼저 밝히는 경우는 1%도 안 되며 대뜸 친구의 옆구리를 찌르듯 『있잖아요』 하고 이야기를 꺼낸다. 학교에서도 선생님을 모른체 하고 지나치거나 주머니 속에 손을 넣은 채 눈만 깜박하는 아이들이 많다.
학교는 그래도 낫다. 부모 말을 안 듣는 아이들도 선생님의 말에는 잘 따르는 편이다. 그러나 가정이나 사회에서의 어린이들은 눈살을 찌푸리다 못해 도대체 가정교육이라는 것이 있는지를 의심하게 할 만큼 버릇없이 군다. 엄부자모의 전통이 사라진 핵가족시대의 어린이들에게 부모나 집안어른은 아무렇게나 대해도 되는 친구와 같다. 아무 관계도 없는 남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딸과 아들이 4학년,1학년인 박 모씨(37·인쇄업)는 출근할 때나 귀가할 때 아는 체도 하지 않는 아이들을 보면서 자식들을 못 가르친 것을 자책하고 있다.
맞벌이를 하는 회사원 고 모씨(40·서울 송파구 가락동)도 휴일에 집에서 쉬노라면 딸(10)이 허리를 넘어가거나,신문을 밟고 지나가고 손님과 친척어른들에게 반말로 대답하기 일쑤여서 낯이 뜨거워질 때가 많다고 한다. 그러나 부모의 사랑을 듬뿍 베풀지 못한다는 미안감 때문에 혼내주지 못하고 오히려 비위를 맞춰주느라 급급한 실정이다.
역시 맞벌이 부부인 이 모씨(40·여)는 10세,7세인 두 아들이 조금만 불만스러우면 파출부 할머니(58)에게 『늬네 집에 가』 『우리집 밥 먹지 마』하고 투정을 부려 서러워하는 파출부를 달래느라 애를 먹고 있다. 그 할머니가 오지 않으면 사람 구하기도 어려운 판에 살림이 엉망이 될 것이 뻔해 아이들을 야단치지만 맞벌이 부부는 아이들 교육에 모질지가 못하다.
『왜 아이들을 더 엄격하게 다루지 못하느냐』 『아직 철이 없어 그러니 좀더 두고 보자』는 식의 부부싸움이 자주 벌어질 뿐이다.
서울 은평구의 중산층 M아파트경비원 이 모씨(42)는 자신을 하인 다루 듯 하는 아이들 때문에 당장 때려치우고 싶은 충동을 수없이 느꼈다. 며칠 전에도 옆 경비초소에 잠깐 볼 일을 보고 돌아오자 3층에 사는 5학년 아이(11)가 『아저씨 어디 갔다 왔어』 하고 반말로 소리치며 대들어 기가 막혔다는 것이다. 어머니가 맡겨 놓고 간 아파트 열쇠를 찾으려다가 추위에 떨며 기다려야 했던 그 잠시 동안을 못 참아 골이 난 것이었다. 빼앗다시피 열쇠를 받아가면서 그 아이는 욕까지 했다.
아이들은 식당,유원지 등의 공공 장소에서나 부모를 따라 이웃집에 갔을 때 멋대로 뛰어다니거나 함부로 물건을 만지고 서랍을 여는 등 버릇없이 행동하기 일쑤이다. 그런데도 부모들은 남들이 꾸중하면 오히려 자식 편을 든다.
강동구 천호동의 M음식점 종업원 박 모씨(46·여)는 며칠 전에도 식당의 객실에서 뛰어다니며 방석을 서로 던지고 젓가락통과 휴지통을 들쑤셔 놓는 아이들을 보다 못해 『좀 얌전히 있어』하고 소리쳤다가 그 어머니와 어른싸움을 벌여야 했다. 『왜 아이들 기를 죽이느냐』고 대들었기 때문이다.
요즘 부모들은 이런 경우 아이들을 즉석에서 야단치지 못하고 『집에 가서 혼내야지』 하다가 막상 시간이 지나면 마음이 약해지고 벌써 잊어버린 것 같은 아이에게 그 문제를 다시 꺼내기도 겸연쩍어져 그만 두곤 한다. 그래서 아이들은 눈치와 요령만 늘어간다.
한림대 정범모 교수(66·교육학)는 『공공윤리와 사회윤리의 부재가 어린이들의 그릇된 행동의 원인이 되고 있다』며 『어린이들에게 규범을 강요하지 말고 자제력,도덕적 판단력을 길러주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결국 버릇없는 아이,눈치보는 요령만 늘어가는 아이들은 부모들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 주부 조 모씨(31·대전 대덕구 오정동)는 최근 아들(6),남편과 함께 독일 여행중 낯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했다. 국내에서 하던 대로 3명이 따로 줄을 서서 빨리 열차표를 사려했던 조씨 부부는 차례가 빠른 아들의 줄로 우르르 몰려갔다가 외국인들의 못마땅하고 화가 난 표정 때문에 기가 질렸다. 궁금해진 아들이 『저 사람들 왜 그러느냐』고 물었을 때 조씨는 대답할 말이 없었다.
서울 명지국교 홍진복 교사(43)는 『국민학교 고학년만 되면 잘못된 행동을 지적받을 경우 「재수없이 걸렸다」고 생각할 뿐 반성을 전혀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것은 바로 교통법규를 위반해 딱지를 떼고는 『재수 더럽게 없다』고 불평하는 부모들을 늘 보면서 자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하종오 기자>하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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