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철저한 실리외교시대 한반도 「구한말 상황」 재판될까/「특수관계」 지속… 경제실리확대 비중 미/「통일한국」 우려 영향력 유지에 부심 일/미·일 독주 견제위해 대한 카드 이용 소/소 경계… 북 개방 통한 긴장완화 원해 중역사는 그 스스로를 되풀이한다지만 한반도를 위요한 오늘의 상황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1세기 전 구한말의 당시와 비슷한 점이 너무나 많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그때 이래 남북한 분단에 직·간접의 책임이 있었던 미 일 중 소 등 4대 열강 외에 남북한 두 나라가 가세한 「2+4」의 현상이 이루어졌다는 것 뿐이다. 그래서 「한반도가 해양세력을 향한 쇠망치이며 대륙에의 비수」라는 1백년 전 열강들이 바라본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상은 지금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상황인 셈이다. 당시 한반도는 일본을 대표로 한 해양세력에는 대륙진출을 하기 위한 전초기지로,러시아에는 해양으로의 도약을 위한 징검다리로,또 오랫동안 기득권을 갖고 있던 중국,즉 청나라에는 기존영향력 유지의 시험무대라는 외부에서 설정한 위상에 따라 정권이 뒤바뀌고 외교노선이 엎치락 뒤치락하는 비극적 상황을 겪게 되었다. 청일·노일전쟁을 거쳐 일본이 한반도의 지배권을 장악했을 때 영국은 한국인에게는 오히려 잘됐다는 식의 반응을 표명했고 미국은 가쓰라태프트밀약을 통해 일본의 한반도 강점을 「승인」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정치문화의 발전정도와 관계없이 힘없는 약소국에 대한 강대국의 외교적 목표는 철저히 실리적이라는 사실이다. 이데올로기가 국제정치상의 중요 변수로부터 퇴장하면서 한반도가 처한 상황을 구한말 상황에 연관시키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다. 물론 우리 국민의 자세와 국력은 그때와는 분명 다르다. 그러나 주변국가의 한반도 접근자세는 구한말 상황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이제 통일이라는 민족적 과제와 주변강국이 한반도에 강요할지도 모르는 외교적 위상을 동시에 극복해야 하는 우리로서는 특히 한반도에 이해관계를 가진 미 일 중 소 등 4대 열강의 대한 전략이 그 어느 때보다도 궁금해지는 시점이기도 하다.<외신부>외신부>
○미국
한반도의 안팎정세가 급변해가고 있으나 미국의 대한국 및 한반도정책은 현행 제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전후 한국과 안보,경제,외교,사회적으로 특수한 관계를 유지해온 미국은 강력한 영향력을 지켜가려 할 것이다. 미국은 그러나 이에 따른 부담을 줄여가려 할 것이다. 미국은 한국에서 이미 차지하고 있고 또한 앞으로 확대를 추구할 이익을 포기할 이유를 발견치 못하고 있다.
미국의 한국과의 이해관계는 상호 호혜적이고 어느 의미에서는 한국측의 의존도가 더 크다는 의미에서 확고한 기반 위에 서 있는 것이다.
우선 안보측면에서 미소 냉전체제의 종식,한소 국교정상화,한중 무역사무소 설치 등으로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환경이 구조적으로 변한 것은 사실이다. 주한미군은 소련의 견제와 북한의 대남 침략억제라는 두 가지의 전략적 목적을 갖고 있다. 북한측은 아직 무력행사의 포기를 행동화하지 않고 있다. 미국은 주한미군이 계속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한국정부와 한국국민의 다수도 이를 계속 요구하고 있다. 미국은 오는 93년에 주한미군의 규모와 성격에 대해 새로운 국제정세에 따른 미국의 세계전략 재평가 차원에서 축소지향의 혁신적인 접근을 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전략적 이해관계를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반도뿐만 아니라 동북아의 전략적 안정을 위해 북한의 핵무기개발 포기를 계속 추구할 것이다.
미국은 주한미군을 남북한의 안전판으로도 보고 있다.
도널드·그레그 주한 미 대사는 한미 관계의 중심이 외교·안보관계에서 경제관계로 옮겨가고 있다고 지적했듯이 국제정치환경의 개선,한미 경제위상의 변화에 따라 한미 관계도 경제에 우선이 두어지고 있다. 심지어 안보·외교관계에서도 방위비 부담의 증액,페르시아만 작전비 출연 등 경제적 부담의 분담증대가 요구되고 있다.
미국의 통상전력은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강한 농산물,서비스시장의 개방과 지적소유권의 보호를 통해 미국의 이익을 확대하자는 것이다. 물론 경제적 헤게모니를 견지하자는 의도가 담겨져 있다.
고도의 경제성장을 지속해온 한국은 절호의 표적이다. 수출시장의 약 25%를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미국의 압력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한국은 미국의 범세계적인 시장개방정책의 시범적인 목표가 되곤 했다. 미국은 앞으로 2∼3개월 안에 재개되는 우루과이라운드협상에서 한국에 협력을 강청할 것이다. 한국에 대한 쌍무적,다국적 시장개방 압력은 지속될 것이다.
미국은 아시아·태평양 국가임을 강조한다. 그들은 아태지역에 반일감정이 잠재,그들만이 「조정자」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워싱턴=이재승 특파원>워싱턴=이재승>
○일본
한반도 통일문제에 대한 일본인들의 관심이 부쩍 늘었다.
이 문제를 특집시리즈로 다루는 신문도 있으며 관련뉴스가 있을 때마다 큰 비중을 두고 있다. 동유럽 공산주의 정권 연쇄붕괴란 도미노현상에 이어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독일 통일의 속도에 놀란 일본은 그 파도가 한반도로 밀려올 것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일본 방위관계자들에 의하면 일본정부도 이미 통일한국의 방위력적정선에 대한 연구에 착수했다고 한다.
국방력이 어느 수준이면 일본 안보에 적정할 것인지,그때 가서 일본은 어떤 방위정책을 취할 것인가 하는 문제들에 골몰하는 것은 한반도 통일을 위협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국방예산 감소추세와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본정부가 지난해말 향후 5개년간의 방위예산을 연평균 3% 늘려 잡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방위비총액의 신장률이 지난 5년간의 5%대에서 3%로 낮아진 점을 두고 가이후(해부준수) 일본 총리는 『국제적 추세를 감안한 억제기조』라고 했지만 총액을 비교해 보면 4조3천억엔 이상 늘어난 것이다.<7면에 계속><6면에서 계속>
게다가 지난해 발간된 뉴스 위크지는 90년 대안에 일본이 핵무기보유국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어 아시아 각국은 물론 세계 각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일본정부는 소련의 변화를 이유로 극동소련군의 위협이 줄어들었다는 사실을 방위백서에 표시했지만 내심으로는 경제태세를 늦추지 않고 있다. 또 제2 제3의 가상적국으로 삼고 있는 중국과 한반도에 대한 경계도 강화하고 있다.
북한과의 국교정상화교섭이 예상보다 빠르고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도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계속 유지하려는 견제심리 탓이다.
지난해 6월 샌프란시스코 한소정상회담 이후 소련과의 관계개선을 신중히 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일본은 그후 6개월 사이에 양국관계가 급진전되자 북한과의 관계정상화에 더욱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한반도 통일문제와 관련해 일본이 「2+4」회담을 자주 거론하는 것도 미 일 중 소 등 4개국이 통일문제협의 당사국임을 강조하고 싶기 때문이다.
일본에 있어서 한국은 무엇인가. 미국의 「안보우산」 속에서 번영을 구가해온 일본으로서는 방위면에서는 한국이 군사동맹국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역사적으로는 대륙 진출의 디딤돌이었으며,「단물」단지이기도 했다. 식민지 경영으로 막대한 이득을 취했으며 그것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한반도가 분단된 후에도 6·25사변으로 인한 전쟁특수경기에 힘입어 경제 부흥의 기틀을 마련했고 최근 20여 년 동안은 막대한 무역흑자로 배를 불려왔다.
그런 나라가 통일이 되어 인구 7천만명의 「대국」이 된다면 두려운 존재임에 분명하기 때문에 오래도록 작은 2개의 한국으로 남아 있어주기를 원하는 것이 일본의 본심일 것이다.<동경=문창재 특파원>동경=문창재>
○중국
역사적으로 중국은 한반도를 자국의 안보와 직결시켜 생각하며 이곳에 적대적 세력이 팽창하는 것을 견재해왔다.
60∼70년대 중소 분쟁의 시대에 중국은 북한을 그 영향력 아래 두기 위해 소련과 경쟁했다.
그러나 대외개방,경제개혁을 추진해온 지난 10여 년 동안 중국의 대한반도정책은 이미 상당한 변화를 보여왔다.
중국은 현상유지를 통한 한반도의 안정을 바라며,북한의 강경한 대내외 정책에 대한 지지를 줄이는 대신 남한과의 접촉을 계속 증대시켜왔다.
이러한 정책변화를 통해 중국은 그 동안 한반도 주변강대국 중 남·북한과 동시에 관계를 갖는 유일한 나라로서 독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고,이는 중국의 대미,대일 관계강화에도 도움이 되었다.
최근 한국과 소련의 수교와 이에 이은 급속한 접근 움직임은 또 다른 의미에서 중소간 경쟁에 눈을 돌리게 만들고 있다.
물론 지금까지 중국의 국내정세나 대외정책으로 미루어 소련처럼 그렇게 단시일내에 전격적으로 한국과 수교에까지 이르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렇더라도 중국은 기본적으로 소련과 동북아시아지역에서 영향력을 다투는 나라이고 공산혈맹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더 이상 자국의 이익까지 희생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해왔다.
중국의 이런 태도는 지난 90년 한햇동안 급속히 진행된 냉전체제의 붕괴와 함께 무엇보다도 자국의 경제적 이익과 필요 때문에 더욱 뚜렷하게 가시화될 전망이다.
중국은 서울과 북경간 무역대표부의 교환을 통해 이미 한국을 실질적으로 인정했다. 이와 함께 인천천진간 부산산동간 직항로의 개설과 황해 환경오염에 대한 공동조사의 실시를 추진하고 있는 사실 등은 중국이 언젠가는 한국과 「공식관계」를 시작하겠다는 고무적인 시사로 해석되고 있다.
중국은 북한과 파국을 원하지 않으나 북한이 중국과 유사하게 개혁과 개방을 통해 변화하도록 더욱 강한 압력을 가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중국 스스로가 북한을 경제적으로 지원하기가 어렵게 됐고 이점은 최근 중국정부가 북한 쪽에 대금을 계속 지불하지 못할 경우 원유공급을 중단하겠다고 통보한 사실로도 그 사정을 짐작할 수 있다.
중국은 북한의 대외개방이 불가피해졌으며 이에 따라 북한이 남한과 대화를 통해 긴장을 완화해나가고 미 일 등과의 관계도 개선해나갈 것을 바라고 있다.
북한의 반대를 무마하고 서울 무역대표부를 설치한 중국은 이제 앞으로 「한국가두체제(일국양제론)를 앞세워,또 실제로 대만과의 통일논의 진전을 통해서,북한측에도 남북한협상의 진전과 교류확대를 위한 압력을 가중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전기침 중국 외교부장은 지난 12월초 「구시」지 최신호에 발표한 「90년대 세계정세의 분석과 전망」이란 논문에서 현시점을 『2차대전 후의 냉전체제라는 구질서가 완전히 무너지고 아직 새로운 질서가 형성이 안 된 혼돈기,또는 과도기』라고 규정하고 있다.
격심한 변화의 내용과 방향을 예측하기 어려운 것이 과도기의 특징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중국의 대한정책도 어떤 정해진 시간표가 있는 것은 분명 아니다.<홍콩=유주석 특파원>홍콩=유주석>
○소련
소련의 대한정책은 정치·안보 및 경제 두 분야로 대별해 살펴볼 수 있다.
우선 경제적 측면으로 볼 때 소련은 일단 아시아국가로서 한국을 극동지역 진출의 발판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소련은 현재의 경제상황으로 볼 때 당장 시베리아 개발을 할 여건은 되지 않으나 앞으로 「자원의 보고」인 이 지역 개발이 최우선 과제임을 직시하고 있다.
소련은 따라서 아시아국가 중 중국과 북한은 능력면에서,일본은 열의면에서 각각 한국보다 뒤떨어지고 있다고 판단,한국을 최적의 경제협력파트너로 간주하고 있다.
소련은 나아가 미 일이 주도하고 있는 태평양경제협력회의에도 적극 참여함으로써 동북아지역에서 미 일의 독주를 견제하면서 이 지역의 경제적 이익을 공유하겠다는 전략인만큼 아태 경제협력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한국과의 협조는 필연적이라고 할 수 있다.
소련과 한국의 경제협력은 또 일본의 소련 진출을 자극할 수 있는 부수적 효과도 거둘 수 있다는 점을 소련은 계산에 넣고 있다.
안보적 측면에서 볼 때 소련은 한국과의 수교를 바탕으로 미국의 아시아에 대한 전통적 영향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보며 북한의 도발을 견제하는 동시에 극동지역에서 군사적 긴장을 완화,자국의 군사력 감축을 용이하게 하려는 생각이다.
이미 지난해 연말 한소간 「모스크바선언」으로 소련의 이같은 의도는 가시화됐으며 소련은 아시아지역에서 집단안보체제를 추구하면서 한반도의 비핵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소련은 이미 유럽에서 군축문제에서 이니셔티브를 행사한만큼 한반도지역에서 가까운 시기에 획기적인 군축제의를 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소련은 전통적인 우방인 북한을 포기하면서까지 한국과의 유대를 강화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한국 역시 맹방인 미 일과의 관계를 냉각시키리라고는 믿지 않고 있다.
따라서 소련은 장기적인 포석으로 일단 한국과의 경제적 유대를 돈독히 하면서 최소한 한반도의 긴장상태를 완화시켜 미 일의 아태지역 군사력 축소를 겨냥할 것으로 보인다.
아태지역의 군축은 소련의 극동개발에 긴요한만큼 이를 위한 활발한 소련의 외교공세가 전개될 것은 분명하다.
올해 4월로 예상된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일본방문,그 이전 또는 직후의 한국방문은 이런 배경에서 이해될 수 있으며 비록 극적인 결과는 노출되지 않더라도 상당한 효과는 있을 것이 분명하다.
한국은 소련의 이같은 태도가 상호 이익에 위배되지 않고 한반도 통일 및 긴장완화에 도움이 되도록 하는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한소 관계를 유지·발전시킬 필요가 있다.<이장훈 기자>이장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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