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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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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입력
1990.12.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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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관 찬 등 아래 잠 이룰 길 없어/어쩌자고 마음은 이리도 설레는가/고향을 생각하면 아득한 천리/센 머리 이 밤 새면 또 한 해 가는구나』­중국의 당나라 때 시인 고적은 섣달 그믐 밤을 이렇게 슬퍼했다. 구세주의 탄생에 환호하는 서양사람들이 세모를 축제로 보내는 것과 달리,동양에서는 돌이키지 못할 이별과 추억의 슬픈 계절이다. ◆대자연의 신비로운 순환을 동양의 고전은 이렇게 말했다. 『이달에 해는 그 일년의 차서가 다하고,별들은 하늘을 한바퀴 돌아왔다. 일년의 수가 거의 장차 마치게 되고,해도 또 새로 시작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한해를 마감하는 음력 12월을 기록한 월령의 귀절이다. 여느날처럼 새벽에 해가 떠서 저녁이면 지는 데도,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옷깃을 여미는 것이다. ◆그러나 섣달 그믐은 또한 즐거운 추억의 날이기도 했다. 방·부엌·문·변소나 뜰 등 집안 구석구석에 불을 밝혀놓고 밤을 새웠다. 자정이 되면 마당에 불을 피운 뒤 푸른 대나무를 태웠다. 푸른 대나무 마디가 탈 때 터지는 요란한 폭음이 집안의 잡귀를 몰아낸다고 믿었던 것이다. 「폭죽」이라고도 하고,「대불놓기」라고도 했다. ◆섣달 그믐은 원래 모든 금전거래를 끝맺는 날이었다. 빚이 있는 사람은 이 날을 넘기지 말고 갚아야 했다. 또 빚이나 외상값을 받을 사람은 자정이 되기 전에 부지런히 찾아다니면서 돈을 받았다. 이 날을 넘기면 보름 동안 빚독촉을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온 집안이 나서서 안팎을 치우는 대청소도 묵은 잡귀와 액을 물리치고 새해를 맞으려는 뜻이었다. ◆3당통합으로 막이 올랐던 90년도 오늘로 끝난다. 수년 만에 처음보는 무역적자와 끔찍스런 범죄,그리고 범죄와의 전쟁 속에 또 한 해가 막을 내리고 있다.한 세대 전 폭죽에 놀라 잡귀가 달아난 것처럼,오늘 그믐밤에 묵은 잡귀들이 이 땅에서 영원히 물러나기를 기대하고 싶다. 그래서 착하고 의롭고 아름다운 「양의 해」를 준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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