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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대란/박무 경제부차장(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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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대란/박무 경제부차장(메아리)

입력
1990.12.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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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흐름에 숫자적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이 부질없는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1990년부터 근 1백년의 세월 동안 우리는 너무도 모진 고초와 시련 속에서 살아왔다. 금세기를 마감하는 마지막 10년의 첫해를 마감하면서 감회가 없을 수 없다. 이제 며칠 후면 21세기로 가는 마지막 연대의 첫해가 끝난다. 20세기를 청산하고 21세기를 새롭게 준비하는 마지막 연대의 첫해를 흘려보내게 되는 것이다.세기말의 이 10년이 우리에게 특히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마치 구한말 때 그랬던 것처럼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정세가 너무도 유동적이고 나라 안의 사정도 변화무쌍한 과도기적 혼란으로 뒤범벅이 돼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주은래가 죽을 때 멀지 않은 장래에 천하대란의 시대가 온다고 했는데 지금 상황은 그 예언을 적중시켜나가고 있는 모습이다. 중국에서는 사회주의체제가 반쯤은 허물어져 어떤 형태로든 『대란』을 겪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돼 있고 소련에서도 레닌과 스탈린이 이룩해놓은 것을 허물어뜨리는 『반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독일이 통일되고 유럽이 통합을 가속화시키고 있으며 일본이 강해지고 미국이 약해지면서 세계의 판도가 이미 달라지고 있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지난 24일 「90년대를 전망한다」는 특집에서 일본과 독일이 핵무장하고 소련에 군사쿠데타가 일어나는 등 세계적 혼란이 예상된다고 했다. 지옥의 바닥에 떨어진 것 같은 혼미한 경제와 소련을 진원지로 하는 세계적 혼란으로 어둡고 비관적인 연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19세기말 세계대전으로 치닫는 국제질서의 일대 격변이 소용돌이치는 가운데서도 우리나라는 정치권력을 쟁탈하는 한줌의 썩은 선비들이 빗장을 닫아걸고 사생결단의 당파싸움을 벌이며 국정을 문란시킨 끝에 결국은 나라를 망치고 말았다. 21세기를 목전에 둔 지금도 우리는 세계사의 흐름에 눈을 뜨지 못하고 대권욕에 맹목이 된 한줌의 정치인들이 주역이 돼서 판을 벌이는 혼란 속에 세월을 보내고 있다.

정치는 독재에서 민주로 가는 중간지대에,경제는 후진에서 선진으로 가는 중진국 수준에,사회·문화는 전근대적 봉건사회에서 근대적 시민사회로 가는 중간지점에 머물며 과도기적 혼란 속에 전진없이 맴돌고 있는 상황이다. 정치인이나 관료 기업인 근로자를 포함한 모든 국민들이 방향이 분명한 역사의식을 갖고 힘을 모으지 않는다면 1백년 전의 수치스러운 세기말적 상황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아직도 반쪽밖에 안 되는 나라에 경제도 미완성이고 정치도 성숙시키지 못한 상태에서 권력쟁탈에만 관심이 쏠리고 역사의 수치도 모르고 반성도 없다면 우리나라는 절망적일 수밖에 없다. 20세기의 마지막 연대를 보내면서 세월의 흐름에 숫자를 매겨가며 한번쯤 역사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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