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으로 페레스트로이카 세계 공인” 고르비/“인생은 65세부터… 자서전 쓰긴 너무 젊다” 대처/“철의 장벽은 걷혔지만 빈부장벽 생겼다” 안탈20세기 마지막 10년의 첫 해인 90년은 「평화」와 「분쟁」이 동시에 진행된 한해였다.
소련 및 동구권의 대변혁으로 촉발된 동서화해의 기운은 독일통일과 전유럽안보협력회의(CSCE)로 그 절정에 달한 반면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인한 페르시아만 사태는 「냉전이후」의 신 시대에 새로운 과제를 던져 주었다.
감격과 격동의 올 한해를 상징하는 「말」들의 성찬을 통해 지난 1년을 되돌아 본다.
▷독일통일◁
▲통일은 환상의 끝이자 눈물없는 이별이며 환희와 희망의 시작이다. 통일은 동독의 편입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며 모든 독일민족의 공동과제로 남을 것이다. (드 메지에르 전 동독 총리·10월3일 동독해산식 고별연설)
▲독일 국민들은 신과 인류에 대한 책임을 인식하고 있다. 독일은 통합된 유럽안에서 세계평화에 기여할 것이다. (바이츠 제커 독일연방 대통령·10월3일 통일상징 국기게양식)
▲국내외에서 우리는 선린관계를 갖기를 희망하며 독일은 우리의 조국,유럽은 우리의 미래다. (콜 독일 총리·10월4일 첫 연방의회 통합회의)
▷페레스트로이카◁
▲페레스트로이카가 시작되기전 우리들은 아주 강력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세계에서 소련공산당 서기장 이상의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내가 권력을 필요로 했다면 개혁과 페레스트로이카는 없었을 것이다. (고르바초프 소 공산당 서기장·7월4일 28차 당대회)
▲내 개인에 대해서가 아니라 페레스트로이카의 중요성을 세계가 공인한 것이다. (고르바초프 소 대통령·11월15일 노벨평화상 수상소식을 접한후)
▲나는 시장경제를 지지하지만 토지사유화는 반대하며 내 시체를 밟고 지나가기 전에는 절대 허용할 수 없다. (고르바초프 소 대통령·12월 초 소련지식인 단체와의 면담)
▲내 생애에 가장 슬프고 짧은 연설을 하겠다. 나는 사임한다. 내 사임은 독재의 도래에 대한 항의의 표시다. 나는 생애의 마지막날까지 페레스트로이카,민주화의 이념을 지지한다.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12월20일 사임발표선언)
▷페르시아만사태◁
▲우리는 생활수단을 빼앗는 것보다 숨통을 끊어버리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신이여,우리가 저들에게 경고했음을 증거하소서. (후세인·8월2일 군중집회)
▲전쟁인가,평화인가의 결단은 미국이 쥐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바그다드의 남자(후세인 대통령지칭)에 달려있다. (부시 미 대통령·10월28일 하와이 공군기지연설)
▲미 소가 대립하고 있었다면 이번 사태는 세계대전으로까지 비화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9월5일 일 소 외무장관 정기협의회)
▷대처 사임◁
▲그녀는 싸우려고 하면 최후까지 간다. 그러나 나는 그녀가 치욕을 당하게 하고 싶지는 않다. (대처 전 영국 총리남편 데니스·대처·11월22일 대처의 사임발표 직전 상의를 마친후)
▲65세의 나이는 자서전을 쓰기 너무 젊다. 인생은 이제부터다. (대처 전 총리·11월28일 총리관저를 떠나며)
▲대학을 나오지 않았지만 그 시간에 울타리의 다른 켠에서 너무나 많은 소중한 경험을 체득했다. (메이저 총리·11월28일 기자회견)
▷기타◁
▲철의 장막은 넘어졌지만 그 자리에는 새로운 「빈부의 장벽」이 생겨나고 있다. (안탈 헝가리 총리·11월20일 CSCE회담)
▲중앙계획과 시장경제는 상호보완적 관계에 있기 때문에 누구도 중앙계획을 지지하기 위해 시장경제를 희생시킬 수 없으며 시장경제를 위해 중앙계획을 경시할 수 없다. (등소평·10월말 교시)
▲국가가 필요로 할 경우에는 무덤에서라도 돌아올 것이다. (이광요 전 싱가포르 총리·9월말 사임을 기정사실화 하면서)
▲바웬사는 약속대로 낚시나 하러 가라. (티민스키 폴란드 대통령 후보·11월26일 1차투표 결과를 놓고)<이상호기자>이상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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