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성탄절,때맞춘 듯 눈이 펑펑 쏟아져내렸다. 화이트 크리스마스,우중충한 날씨인데도 서울의 설경은 온화하고 깨끗하다. 순백의 아름다움을 오랜만에 맛본다. 어수선하기 짝이 없던 한 해가 깨끗하고 아름답게 사라지는 것만 같다. 흰 눈에 덮인 성탄의 휴일에 사람들은 어떤 생각에 잠겨 하루를 보냈을까. ◆크리스마스가 오면 모든 신문들은 종교지도자들의 성탄 메시지나 강론을 전해준다. 김수환 추기경의 말엔 많은 사람들이 귀를 기울인다. 시대의 아픔과 갈 길을 명료하게 들려주기 때문이다. 1985년대의 상황은 암울했다. 『우리는 지금 정치부재,진리부재,드디어는 인간부재의 어둠 속에 갇혀 있다』고 토로하며 필요한 것은 혁명도 반혁명도 아닌 국민 모두의 화합을 강조하며 민주화를 촉구하였다. ◆김 추기경은 올해 성탄미사를 집전하며 다시 새로운 메시지를 전달한다. 『온갖 고통과 희생을 무릅쓰고 사랑의 길을 갈 때,우리 사회 나라 겨레를 갈라놓은 빈부의 격차가 없어지고 지역 계층 세대간의 벽도 사라질 것이며 마침내 도저히 넘을 수 없게만 보이는 남북 분단의 장벽도 무너지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종교지도자의 메시지와 강론을 통해서도 시대의 변화를 능히 읽을 수 있다. ◆우리는 아직까지 화해를 이루지 못한 가운데 통일의 벅찬 대업을 지향해가는 사명을 안게 되었다. 짐이 더 무거워진 셈이다. 우리 내부엔 격차로 인한 금과 벽이 너무나 많다. 금을 지우고 벽을 허물려는 노력보다 오히려 굳혀가는 경향이 심해감은 안타까운 일이다. 나눌 줄을 모르고 양보를 패배로만 여긴다. 사랑은 밀어두고 미움을 자꾸 앞세운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보내면서 사랑의 메시지를 몇 번이고 반추할 만하다. 한 해를 마감하는 뜻이 이런 데 있다. 순백의 청결에 환호하고 불꽃같은 사랑이 타오를 때 우리의 삶은 인간답게 피어날 것이다. 고난은 나눠 지는 각오만 있으면 두렵지가 않다. 화해와 통일의 단서가 무엇인가 모두 곰곰 생각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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