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 대물림”… 일가 자살까지/국회 졸속입법·정부 탁상행정 더 부채질/정부조사이래 최고 폭등/「산위 텐트」 유문정씨에 따뜻한 이웃정도90년의 사회면은 범죄로 얼룩졌다. 연초부터 서민들이 전·월세값 폭등으로 한숨짓는 사이 연쇄방화라는 새로운 범죄가 시작되더니 잔인한 유괴살해,일가족 생매장사건 등이 1년 내내 국민들을 불안하게 했다. 잦아진 남북왕래로 국민들은 기대에 부풀기도 했으나 이문옥감사관 사건,보안사의 사찰파동,판·검사와 폭력배의 유착,엄정난 수해 등 재난과 우울한 사건은 꼬리를 물었다. 90년의 사회면을 정리한다.<편집자주>편집자주>
『따스한 방에서 함께 살수 있게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서울 은평구 수색동 7평 남짓한 지하셋방. 창문 하나 없어 대낮에도 전기불을 켜야하는 방에서 김인오씨(45·KKMS 사장)는 그동안 피붙이보다 더 가까이 도와준 유문정씨(39·여)로부터 장녀(17·M여고 2)가 그린 예수그림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고 기뻐했다.
전·월세값 폭등으로 4월초 7만원짜리 단칸 사글셋방에서 쫓겨나 수색동 산30 공원용지(속칭 봉산)에 텐트를 쳐야했던 파출부 유문정씨(한국일보 4월4일자)는 「집없는 설움」의 상징적인 서민이었고 유씨 가족을 도와온 김씨는 이웃사랑의 상징적 인물이었다.
철거반과 숨바꼭질하는 천막살이로 어린시절을 보냈던 김씨는 보도가 나오자마자 유씨를 찾아가 5백만원짜리 전셋방을 마련해 주었다. 3남매의 교육비 지원까지 약속한 김씨는 한번도 거르지 않고 한달에 한번씩 유씨 집에 찾아가고 있다.
희망찬 90년대에 서민들이 처음 맞이한 것은 전·월세값 폭등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급기야 집때문에 목숨을 끊기까지 했다.
지난 4월10일 서울 강동구 천호1동 32 황모씨(50) 집 지하셋방에서 턱없이 올라버린 보증금을 구하지 못한 엄승욱씨(40)가 집문제하나 해결못하는 가장의 무능을 자책하면서 『대대로 이어져온 가난을 자식들에게만은 물려줄 수 없다』는 유서를 남기고 부인,자녀 등 3명과 동반자살한 사건은 전세값 파동이 얼마나 심각했던가를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서울시 조사에 의하면 89년말 현재 2백85만7천여가구중 무주택 가구는 56.9%인 1백62만6천가구나 된다. 주택은행의 주택 및 전·월세가격 동향조사에 의하면 전·월세파동이 가장 극심했던 2월 한달에만 전국 평균 11.9%,서울은 14.5%나 방값이 올라 85년 집계시작이래 최고치를 기록,몇차례나 확인했을 정도였다.
이같은 현상은 정부당국이 임대차보호법을 개정하면서 아무 경과조치나 예고없이 임대기간을 최하 1년에서 2년으로 연장했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집 주인들은 2년치 보증금을 한꺼번에 받으려고 해 세입자들을 울렸다.
그후 부당임대료 신고센터 설치,임대료 등록제 등 정부의 강력한 제동에 의해 전·월세값는 안정추세로 돌아섰지만 서민들의 상처는 아물지 않고 있다.
국토개발연구원 김정호 수석연구원은 『올해초 폭등했던 전·월세값은 정부와 국회의 탁상행정과 졸속입법이 복합된 것이 주원인』이라며 『UR 협상의 영향으로 이농자들이 대거 도시로 유입될 경우 수요폭증에 의한 제2의 전·월세 파동이 우려된다』고 말한다.
집없는 서민들의 아픔과 이웃의 온정을 함께 경험했던 유씨는 요즘도 파출부 일을 나가 힘겹게 생활하느라 온몸이 퉁퉁 부어있다. 유씨와 그의 3남매는 함께 두손 모아 기도를 올리고 있다.
『새해에는 양처럼 순하고 성실한 서민들이 편안히 살수 있는 사회가 되게 하소서』<송용회기자>송용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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