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경 고르비 측면지원용 분석/새 연방조약·경제난 등 갈등심화 관련 향방주목예두아르트·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이 20일 전격 사임을 선언한 것은 소련내 개혁파와 보수파 또는 반동세력간의 갈등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에 처해있는가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다.
지난 17일 개막된 제4차 인민대표대회는 개막전부터 신연방조약채택과 정부구조개편을 통해 소련의 새 체제를 정착시키는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전세계의 주목을 끌었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이번 대회에서 ▲신연방조약에 대한 국민투표 실시 ▲분쟁지역에 대한 비상사태 선포 ▲대통령 직접통치 실시 등 강경 발언을 계속 터트려온 것은 소련의 위기상황을 그대로 반영하는 동시에 그가 이번 대회를 계기로 「외치」에서 「내치」로 본격적인 전환을 꾀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신호이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하에서 고르바초프의 「분신」이기도한 셰바르드나제 외무장관이 돌연 사임을 발표한 것은 앞으로 소련체제의 진행방향에 대한 주도권을 놓고 개혁파와 보수파,또는 반동세력간의 한판승부가 본격화됐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셰바르드나제는 「사임」이라는 「충격요법」을 사용함으로써 보수·반동세력에게는 경고를,개혁파에게는 적극적인 자세를 요구하는 한편 고르바초프 대통령에게는 불만의사를 표시해 신연방조약채택을 둘러싸고 첨예한 의견대립을 보이고 있는 현 상황을 극적으로 풀어나가려는 다각적인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그는 사임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인민대표대회는 현재 개혁파와 보수파라기 보다는 골수 반동세력간의 진짜투쟁이 전개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대령 견장을 달고 있는 사람」을 명확히 지칭,그의 주요 비판대상이 의회내 강경보수집단인 「소유즈」그룹의 대표인 빅토르·알크스니스 대령임을 시사했다.
「소유즈(연합)」 그룹이란 소련 인민대표대회내에 구성되어 있는 강경보수집단으로 회원수는 약 4백∼5백명선. 전체 대의원수는 2천여명으로 이 가운데 군출신 및 정통공산주의자들이 주요 구성원들이다.
셰바르드나제는 이와 함께 보수파의 공격에 몰리고 있는 개혁파에 대해서도 분발을 촉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그동안 보·혁간의 절묘한 균형을 유지해왔던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점증하는 민족분규와 공화국들의 분리독립요구,악화되고 있는 경제상황 등으로 차츰 보수파의 주장에 끌려가는 인상을 주게되자 이에 대한 강한 불만을 표시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 점은 셰바르드나제가 『국민들이 선출한 대표들이 그들의 권한을 대통령에게 넘겨주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소련에는 독재가 오고 있으며 어떤 종류의 독재가 올지,또한 누가 독재자가 될지 아무도 모른다』고 역설한데서 잘 나타나고 있다. 이는 옐친 러시아공 최고회의 의장의 고르바초프 비판과도 그 맥락을 같이한다.
하지만 그가 고르바초프와 정면으로 대립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분석이 일반적이다. 그가 사임연설에서 『대의원들은 자신들의 결정이 고르바초프 뿐만 아니라 페레스트로이카와 민주주의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나는 고르바초프의 지지자이며 6년 가까이나 그의 개혁정책을 지지해 왔다』고 밝힌데서도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그의 사임발표는 고르바초프의 개혁에 제동을 거는 보수·반동세력의 집요한 노력을 좌절시키는데 「총대를 메려는」 의도라고 풀이할 수도 있다.
셰바르드나제는 일찍부터 보수·반동세력의 표적이었으며 최근 바카틴 전 내무장관의 목을 날린 보수파들은 셰바르드나제에 대해서도 집중 포화를 퍼부어 왔다. 이러한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셰바르드나제는 더 이상 보수·반동세력에 공격의 빌미를 주기 보다는 오히려 사표를 던짐으로써 향후 보·혁대결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최근 페르시아만에 대한 소련군 파병문제에 대해 수차례에 걸친 부인에도 불구하고 보수파들로부터 끊임없는 의심을 받아왔으며,이번 사임발표에서도 자신에 대한 보수파들의 공격때문에 사임한다는 점을 명백히 밝혔다.
셰바르드나제의 충격적인 사임선언은 어떤 식으로 처리되든지간에 현재 개최중인 인민대표대회에 큰 영향을 미칠 것임은 확실하다. 그는 전세계가 인정하는 「고르바초프의 그림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또 고르바초프가 지난 85년 3월 공산당 서기장직에 오르기전부터 고르바초프와 소련의 앞날을 숙의,페레스트로이카를 발진시켰으며 그해 7월 외무장관에 취임해 페레스트로이카의 대변인으로서의 역할을 훌륭히 해내왔다. 때문에 그가 사임을 발표한 것은 개혁파로서는 더이상 물러설 자리가 없다는 점을 상대방에게 명백히 선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독일통일의 완성,전유럽안보협력회의(CSCE)의 성공적 개최,동서 양 진영간의 잦은 정상회담 등으로 동구권의 대변혁과 이로 부터 촉발된 「냉전이후」의 새로운 국제질서 재편성을 어느정도 마무리지은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말썽많은」 국내문제와 전면전을 치를 태세를 갖추고 있는 현 상황에서 「돌발적」인 이번 사태가 구체적으로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는지는 아직 미지수다.
하지만 셰바르드나제의 사임선언은 이번 인민대표대회가 소련의 앞날을 가름할 중대한 대회라는 점과 개혁파와 보수파가 서로 한치도 양보할 수 없는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감안해볼때 이제 소련과 수교를 이룬 우리나라로서는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보아야할 시점이다.<이상호기자>이상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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