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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고/김창열칼럼(토요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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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고/김창열칼럼(토요세평)

입력
1990.1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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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학이 매우 바쁘다. 그것은 대입 탓만이 아니다. 요즘 우리 대학은 그냥 바쁘다기 보다는 무엇에 쫓기듯 다급해 보인다. 그 모습은 신문지면에서 읽을 수가 있다.보도에 의하면 전국 4년제대학 총·학장님들의 모임인 대학교육협의회는 10월과 11월9일 잇따라 임시총회를 소집해,대학 평가인정제도의 시행문제를 협의했다. 그러나 결론은 제도시행을 일단 보류한다는 것이었다. 평가 결과가 아무래도 신통치 못할 군소대학들의 반발 탓이었다고 한다. 이에 대하여 문교부는 평가인정제도를 새해부터 시행한다는 방침에 변함이 없음을 거듭 밝혔다. 이로인해서 문교부와 대학간에 새로운 마찰이 생길지도 모른다.

엿새뒤(15일)에는 전국 대학 교무처장협의회 긴급 임시총회가 열렸다. 이 임시총회는 이른바 기여입학제도의 시행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나섰다. 심지어 몇몇 명문대학은 이번 대입에서부터라도 이 제도를 강행할 뜻을 비쳤다. 그러나 문교부는 기여입학제도가 위법임을 들어 강한 제동을 걸고 나섰다. 여기에도 심각한 말썽의 소지가 있다.

다시 엿새 뒤,이번에는 경인지역 32개 사립대학 기획실장협의회가 열려,새해 등록금을 15∼20% 올리기로 결의했다. 지난해 평균 10%의 등록금을 인상하고도 학내분규가 치열했던 사실에 비추어,이 뒤끝이 조용하지 못할 것은 뻔한 일이다. 실제로 어떤 대학에서는 벌써 학생들이 총장실을 점거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렇지 않은 대학도 학생회가 등록금의 공동책정을 요구,이미 협의를 시작한 곳이 여럿이다. 이런 경우도 학생들이 등록금 인상폭의 축소,재단전입금의 증대를 요구하고 나서 대학 당국이 밀리는 형세를 보이고 있다. 봄철 등록금 분규의 재연은 불가피할 것 같다.

그래서 그랬던지,지난 8일에 열린 전국 대학 학생처장협의회 정기총회는 사립대 등록금을 문교부가 조정,인상폭을 통일해줄 것을 건의하고 나섰다. 학생들과 직접 부딪쳐야 하는 실무책임자들의 고충을 담은 건의인지는 몰라도,대학 자율의 구호에서 멀리 벗어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신문 스크랩을 다시 정리해 보며,대학간의 협의회가 많은데 약간 놀랐다. 대학교육의 발전을 위해서,대학간의 횡적 연락과 협의가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어쩐지 자신이 없어 보이고 「담합」이란 말을 떠올리게 한다. 대학의 자율과 대학마다의 특성과 독자성이 그런 「담합」속에 매몰되지나 않을까 걱정도 된다.

여하간 앞에본 대학간 여러 협의회의 다급한 듯한 움직임은 모두 「돈」­ 사학재정의 위기로 귀착된다. 이것이 지금 우리대학을 바쁘게 하는 대학고의 한 단면인 것이다. 그 사정은 재정규모가 영세하다는 것뿐 아니라,그 구성이 ▶등록금 80% ▶재단전입금 5∼9% ▶기부금 3∼7% ▶국고보조금 1%라는데 잘 나타난다. 이를 타개하는 길이 수익자 부담원칙에 따라 등록금을 올리되,전입금·기부금·보조금을 큰폭으로 늘려 등록금의 비중을 떨어뜨리는 것임은 자명하나,그 실현은 어느것 하나 여의치가 못하다. 그러다 보니 각종 협의회가 구수회의끝에 내놓은 결의 내용들은 그 자체로 논리가 일관되지 못하고,서로 상충·모순되기도 한다.

예컨대,대학 평가인정제도는 한마디로 각 대학의 내실을 공사·공인·공시하자는 것이다. 교육을 수요·공급의 법칙이 지배하는 시장경제에 비유한다면,그것은 교육이라는 상품의 질을 판정하는 일이나 같다. 교육의 소비자격인 학생과 학부모는 그 판정결과를 보아 소비행동(대학선택)을 결정하고,상응한 값을 내면된다.

이렇게 본다면 대학 평가인정제도의 보류는 앞으로도 상품의 내용과 질,그리고 상품간의 차등은 덮어둔채 소비자의 선택과 구매만을 요구하는 상행위를 계속하겠다는 것이나 같다. 이것이 사리에 맞지 않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담합」 또는 정부통제에 의한 등록금의 일률인상이라는 편법을 쓸 수 밖에 없고,그나마 소비자(학생)의 저항을 불러 등록금책정이라는 대학 본래의 권한마저 침식을 당한다.

대학이 바라는 국고보조금의 증액도 마찬가지요,이른바 기여입학제 등의 기부금 확충문제 또한 그렇다고 할 수 밖에 없다. 국고의 사학보조가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더라도,그 돈은 결국은 국민들의 세금인 만큼,납세자가 납득할만한 대학형편의 평가와 공개가 앞서야 하는 것이다. 이때의 평가·공개대상에는 사학재정의 어려움 뿐이 아니라,재단 전입금을 늘리기 위한 노력과 전망은 어떤 것이며,모자라는 재원을 합리적으로 쓰려는 노력이 과연 얼마나 있었는지까지도 포함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문제를 해결하려는 공감대가 정부와 대학과 국민 3자간,사학재단과 대학 당국과 학생 3자간에 먼저 생겨나야 하는 것이다. 이른바 기여입학제 따위도 그런 공감대가 있은 연후에라야 논의의 의미가 생긴다.

지금 형편으로 보아서 사학재정의 위기가 가져올 대학교육의 질 저하가 심각한 것임은 분명하다. 덩달아 등록금분규 등이 재연하여,대학이 새해 사회불안을 가중시킬 가능성도 매우 크다. 그렇다고,국고보조·기여입학금 등의 목돈을 대학에 쥐어주면 이런 대학고가 단숨에 풀릴까.

꼭 그렇다고 할 수만은 없을 것 같다. 오히려 그 근본 해결책은 대학 스스로 「평가와 경쟁의 시대」를 여는 것이 아닐까 한다. 원하는 대학끼리만이라도 먼저 평가인정제도를 조속히 시행하여,평가수준에 따라 입학정원·신입생 선발·등록금 책정의 자율권을 확대해야,대학이 살고 재정난도 풀 수가 있으리란 것이다. 이 과정이 대학간의 경쟁을 전제로 함은 물론이다. 학생만 경쟁을 하고 평가를 받는 것이 아니라,이제는 대학도 경쟁을 하고 평가를 받아야 하는,새로운 양상의 대학고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상임고문·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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