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소 단절·불행 씻고 역사의 새 장 열때”/보완적 경제구조… 서로 혜택얼마전까지만 해도 한국의 대통령이 모스크바대학의 강단에 서리라고는 어느 석학도 생각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제 인류는 반목과 대결,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나 한 울타리속에서 평화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됐습니다. 역사가는 이 거대한 변화를 20세기 인류가 이룬 가장 빛나는 성취로 기록할 것입니다.
이 대학이 낳은 문호 곤차로프는 러시아인으로서 첫 한국 견문록을 남겼습니다.
그는 견문록에서 한국인이 근면하고 생활력이 강함을 알았으며 신기하게도 가난한 사람까지 시를 쓸만큼 학식이 있다고 기술했습니다.
한국이 이룬 발전의 원동력은 바로 그가 지적한 우리국민의 높은 교육수준과 근면성,그리고 개방성입니다.
우리겨례는 20세기초 나라를 잃었다가 2차대전 종전과 함께 해방을 맞았으나 외세에 의해 분단의 아픔을 당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냉전은 1950년 한반도에서 전쟁으로 폭발시켰습니다.
60년대초 한국이 경제사회개발을 시작했을때 1인당 국민소득 80달러,수출 4천만달러였으나 그로부터 26년뒤 서울올림픽을 치를 수 있었습니다. 한국은 이제 1인당 국민소득 6천달러,수출 6백50억달러의 신흥산업국가로 발돋움했습니다.
한국은 또 정부수립과 함께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했지만 오랜 전통사회로부터 이어진 가부장적 의식과 권위주의적 정치풍토로 파란과 시행착오를 거듭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한국은 진정한 민주주의시대를 열었습니다.
한국의 대학은 자유와 열기로 충만돼 있습니다. 학구와 낭만에 탐닉하는 학생도,볼셰비키혁명을 찬양하는 급진적 학생도 있습니다. 한국의 대학은 모든 면에서 앞서가려 하기에,소련에 대한 관심도 날로 커지고 있습니다.
한국은 지난 28년간 연 8.6%의 높은 경제성장을 거듭해 왔습니다. 초기부터 한국은 수출에 주력했고 근로자는 밤낮없이 일했습니다. 60·70년대 한국의 수출은 노동집약적 상품이 주종을 이루었고 70년 후반,80년대 들어오면서 중화학공업,첨단산업제품 중심으로 발전했습니다.
예를 든다면 영국의 한 은행이 불가능하다고 진단했던 울산 현대조선소가 2년반만에 완공된 것은 기업·근로자의 「할 수 있다」는 신념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한때 소련시인 마야코프스키가 10월혁명의 감격속에 「부러워하라,나는 소련시민이노라」고 노래한 것을 나는 상기하고 있습니다.
70여년 지난 이제 그 혁명의 빛바랜 이념은 또다른 혁명과 만나고 있습니다.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가 어려움과 도전을 안고 있는 것은 사실일 것이지만 나는 그러나 결코 회의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소련은 광대한 국토,무한한 자원,그리고 첨단과학기술,찬연한 문화를 가지고 있는 초강대국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우리의 개발경험에 비추어 시장경제로 방향을 설정한 소련경제의 앞날은 밝다고 확신하며 새로운 친구인 한국은 소련의 개혁을 지지할 것입니다.
우리 두 나라간에는 지난시대 86년간의 단절이 있었습니다. 스탈린시대때 한국전쟁이 일어났고 83년에는 소련 공군기에 의해 우리 민간여객기가 피격당했습니다. 한소 양국은 냉전시대의 불행을 씻고 이제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어야 합니다.
한반도의 첨예한 대결은 아시아·태평양지역의 평화에 핵심적 과제가 되고 있습니다. 한소 두 나라가 한반도냉전의 얼음을 깨는 일은 이 지역의 평화와 협력의 질서를 촉진하는 관건인 것이며 오늘 나와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갖고 한반도를 포함한 아시아·태평양의 평화·번영을 위해 공동노력해 나갈 것을 밝혔습니다.
이것은 몰타 미소 정상회담으로부터 「한지붕속의 유럽」을 이룬 평화의 새 질서가 유라시아대륙 동쪽으로 오고 있음을 말하는 의미있는 진전인 것입니다.
이제 한국만이 이 지상에서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게 됐습니다. 한반도문제의 해결방향은 현실을 인정하는 바탕위에서 남북한이 협력·교류관계를 이루는 것입니다.
우리는 북한과 대결아닌 동반자의 관계를 이루려하며 결코 북한의 고립을 바라지 않습니다.
북한도 오랜 폐쇄노선에서 나와 우리는 물론 국제사회와 협력하는 관계를 이루어야 합니다. 세계에 넘치는 개방·개혁의 물결을 북한만이 거스를 수는 없는 것이며 이 길이 북한의 발전을 도울 것입니다.
한소 양국의 경제구조는 상호보완적이어서 서로에게 혜택을 줄 것입니다. 한국은 각종 소비재와 그것을 생산할 수 있는 설비를 공급할 수 있으며 한국은 소련의 선진과학기술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교류·협력의 증진은 비단 경제분야에 그치지 않고 모든 분야에 걸쳐 우리 모두에 결실과 보람을 안겨줄 것입니다.
우리는 더욱 평화롭고 번영된 세계를 향하여,모두가 행복을 누리는 21세기를 향하여 손잡고 나아가는 동반자가 돼야 할 것입니다.
◎소 학생들과 30분 일문일답/“북한 학생들이 밀입남했다면 더 심한 처벌 받았을 것”
노태우 대통령은 40여분간의 연설을 끝낸 뒤 곧바로 세명의 학생들과 30여분간 즉석에서 일문일답을 가졌다.
다음은 일문일답을 간추린 것이다.
(신문학 전공학생) 소련내 거주하는 한국인이 한국으로 이주할 전망 및 가능성에 대해.
『한소 양국의 교류가 앞으로 더욱 확대되고 심화증진되면서 양국국민이 쉽게 오가고 양국관계가 깊어질때 그 문제 역시 양국간 외교절차를 밟아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대 북한 정책을 재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세계청년학생축전 참가를 위해 평양에 간 학생을 귀국후 엄중처벌한 것은 현행법을 어긴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 법을 언제쯤 폐지할 수 있겠는가.
『한 나라의 학생들이 다른 나라를 방문하는 것은 그 나라의 법적절차에 의해 얼마든지 가능하다. 우리정부도 누구나 북한을 방문할 수 있게끔 문을 열어놓고 있으며 그에 따른 절차를 정해놓고 있다. 그러나 그 법과 절차를 무시해버리고 국법을 지킬 이유가 없다는 반국법적인 방법으로 몰래 갔다는 것은 법에 저촉되는 것으로서 벌을 받게되는 것이며 이는 다른나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만일 북한학생이 남한에 그런 방법으로 왔다면 열배 스무배 벌을 받았을 것이다』(박수)
지금도 한국국민이 북한으로 가는 것을 금지하는 법률이 있는가.
『한국의 법을 어기지 않는 한 북한에 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하등의 장애가 없다』
(개도국의 경제발전전공학생) 노대통령께서 실례를 들어가며 경제발전을 위한 정부의 주도적 역할을 평가하고 잘 설명했는데 앞으로 한국에서 국가주도 경제의 형태가 어떻게 변화하겠는가.
『선진국의 경우 시장경제원리에 의해 민간주도의 경제질서가 이루어지지만 후진국,특히 개발도상국은 독자적으로 발전할 수 없기 때문에 정부가 도와주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기업이 공장을 세우고 싶은데 돈이 없다면 정부에서 기업의 장래성을 봐가며 빌려줘야 하며 차관도입시에도 지불보증을 서야 한다. 또한 방향과 좋은 모델을 유도하기도 한다. 다만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가는 문턱에 서있는 한국으로서는 이 문턱만 넘으면 앞으로 정부 주도가 아닌 민간주도 경제를 이룰 수 있으며 정부는 극히 필요한 지원만 해주는 입장에 설 것이다』
고르바초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한소 경협을 논의했는데 그 전망은.
『아시다시피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여러분이 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을 위해 온갖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데 대해 경의를 표했다. 우리는 서로가 보완적관계가 돼있다. 소련은 광대한 국토,무한한 자원,고급 첨단기술을 갖고 있으며 한국은 80년대 1년 평균성장률이 8.8%로 세계 제1의 성장속도를 이룩한 생산기술을 갖고 있다.
경공업에서 중공업에 이르는 여러분야에서 한국은 높은 수준에 이르고 있다. 따라서 여러분들이 지닌 장점과 우리의 장점,이 두가지가 결합이 되면 무서운 속도의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여러분이 추진하는 시장경제도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우리 양국 정상은 이런점에 대해 진지한 협력관계를 다졌다』
대통령의 연설을 들으니 대통령께서 러시아문학에 깊은 이해를 갖고 있는 것에 감명받았다. 불행히도 위대한 문호를 탄생시키고 훌륭한 문화전통을 가진 소련의 청소년들은 이를 이어받지 못하고 많은 사회문제를 빚고 있다. 한국의 청소년은 어떠한가.
『내가 어릴때 어느나라 보다도 러시아의 문학에 심취했었고 특히 톨스토이를 좋아했다. 소련이 안고 있는 청소년문제는 한국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도 위대한 조상으로부터 훌륭한 문명·문화를 이어받았지만 우리 청소년도 이를 이어받지 못해 심각한 사회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세계의 모든 어린이들에게 그들의 훌륭한 조상이 남긴 문화,얼,전통을 심어주고 알려주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때 장내에는 박수가 터져나왔고 다른학생이 질문하려고 마이크에 다가간 순간 로구노프 총장이 『물어보고 싶은 것은 많겠지만 질문은 이것으로 끝내겠다』며 회견을 끝냈다. 노대통령은 강당을 떠나기전에 마지막으로 학생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고 이어 학생들의 계속되는 박수속에 로구노프 총장의 안내를 받아 강당을 나섰다.
◎러시아어 통역/신연자씨/재미교포… 한때 미서 교수역임/노문학 조예,연설문 작성도와
노태우 대통령의 방소 행사중 노대통령 곁에 그림자처럼 붙어 러시아어 통역을 돕고 있는 샌프란시스코 한인 인력개발원장 신연자씨(51)는 국내에서 보다 미국 교포사회에서 더 잘 알려진 인물이다.
신씨는 노대통령의 모스크바 도착에 훨씬 앞서 우리 정부측에 의해 주 모스크바대사관에 특채돼 현지에서 사전준비작업을 도와왔다.
우리측이 신씨를 선택한 이유는 지난 6월 샌프란시스코 한소 정상회담에서와 같은 이중통역의 번거로움을 피하고 역사적회담에서 정확한 의사전달을 하기 위한 배려에서이다.
정부는 노대통령의 방소에 앞서 흔치않은 러시아어 통역전문가를 찾느라 매우 고심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국내외를 샅샅이 뒤진 끝에 신씨와 국내 모대학교수 등 2명을 선발했다.
특히 신씨는 러시아어 통역뿐만 아니라 러시아문학 전문가로 노대통령의 연설문 작성등에도 러시아적 표현을 가미하는 등 도움이 컸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기여고를 졸업한 신씨는 미 버클리대에서 노문학을 전공한뒤 68년 예일대에서 노문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뉴욕 주립대에서 교수로 2년간 재직하다 74년 귀국,고려대에 노문학과를 설치하고 2년간 학과장직을 맡은 후 다시 도미,캘리포니아 주립대에서 강의했다.<한기봉기자>한기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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