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침·신뢰구축 선후 못 좁혀/서로 비난강화 불신 또 드러내/남,불가침 구체방안 제시·북,화해수용은 일단 의미남북 양측은 12일 제3차 고위급회담 첫날 회담에서 각각 수석대표의 기조연설을 통해 「합의서」에 대한 수정안을 제시했다. 양측은 그러나 외견상 서로의 입장을 수용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음에도 불구,합의서를 채택하는 기본원칙에 있어서는 물러서지 않았다.
즉,우리측은 불가침선언의 구체방안으로 기본합의서를 먼저 채택하자는 단계적 방안을 제시한 반면 북측은 아무런 전단계 조치없이 곧바로 불가침선언에 들어가자는 기존입장을 고수했다.
불가침선언 자체에 대해서는 서로간에 아무런 이의 제기가 없는 가운데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해 신중한 귀납적 접근을 하자는 우리측의 입장과 선언부터 한 뒤 후속조치를 강구하자는 북한의 주장이 팽팽히 맞선 것이다.
이는 얼핏 보기에는 불가침선언에 대한 접근방식의 차이이지만 여기에는 남북문제 해결의 요체인 상호신뢰 문제가 내재돼 있어 쉽게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
따라서 13일의 두 번째 회담(비공개)에서 서로간에 원칙문제에 있어서의 양보가 나오지 않을 경우 「합의서」 도출은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양측은 특히 이날 회담에서 서로의 태도에 대해 강도높은 비난을 함으로써 상호불신의 정도를 단적으로 나타냈다.
이날 기조연설에서 우리측은 이미 3차례의 실무대표 접촉에서 밝혔듯이 불가침선언 채택의 전단계로서 「남북 관계개선 기본합의서」의 채택이 불가결하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불가침선언 자체에는 반대하지 않으나 지금과 같이 남북관계가 비정상인 상태에서는 불가침선언이 실효성을 갖지 못할 뿐 아니라 지켜지지 않을 경우 오히려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입장을 분명히했다.
우리측은 특히 ▲남북간 편지 한 장 오가지 못하며 ▲철도와 도로가 끊긴 채 ▲이산가족들의 고향방문이라는 기본적 인도주의 사업마저 실현되지 못하고 ▲고위급회담 시작 이후 상대방에 대한 비방중상이 계속되며 ▲우리측 최고당국자에 대한 비방도 중지하지 않고 ▲일부 재야인사의 불법행동을 선동 고무하고 있는 점을 비정상관계의 방증으로 제시했다.
이같은 비정상관계의 교정없이는 대결상태 해소는 물론 교류협력 실시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우리측 시각을 전달한 것이다.
따라서 선 기본합의서 후 불가침선언은 변경할 수 없는 원칙이라는 점을 분명히했다.
이에 반해 북한측은 기조연설에서 『평화문제에 대한 남측의 태도는 명백히 우리와 대조적』이라고 스스로 지적했듯 군사문제의 우선해결을 거듭 주장했다.
북측은 이날 자신들의 불가침선언과 우리측이 지난 10월 평양 2차 회담에서 제의했던 「화해와 협력을 위한 공동선언」을 통합했다며 「불가침과 화해협력에 관한 선언」 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북측의 이 방안은 불가침선언의 3요소인 ▲무력사용 금지 ▲분쟁의 평화적 해결 ▲경계선확정 등을 포함하고 있는 데다 명칭 자체에 「불가침」이 들어 있어 사실상 불가침선언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북측의 제안에는 우리측이 요구하는 교류협력에 관한 구체적 실천사업들이 결여되어 있어 이같은 분석을 뒷받침한다. 즉,북측의 제안은 형식상으로 다소 진전된 것처럼 보이지만 뼈대는 불가침선언을 유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북한의 선 불가침선언채택 원칙 역시 조금도 후퇴된 것은 아니며 우리측의 원칙과 여전히 상충된다.
다만 이날 양측 기조연설에서 평가할 만한 것은 북측의 외양상 진전과 함께 우리측의 불가침선언 방안제시라 할 수 있다. 우리측이 이날 처음으로 내놓은 불가침선언 안에는 북측이 제시한 내용 외에 「불가침」을 보장하기 위한 6개항의 보장장치가 들어 있어 선전차원에서의 활용을 막으려는 우리측의 의지를 엿보게 한다.
양측은 이처럼 약간씩의 태도변화를 보였음에도 불구,기본적 입장의 불변과 마찬가지로 상대방에 대한 불신을 상당히 직선적으로 표시했다.
우리측은 사실상 불가침의 성격을 갖는 7·4 공동성명의 채택 후에 발생한 땅굴 발견,버마 아웅산사건,KAL858기 폭파사건 등을 구체적으로 열거하며 말뿐인 불가침선언이 의미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 북한측은 우리측의 군비증강정책을 지적한 뒤 『미군을 붙잡아두기 위해 불가침선언을 채택하는데 난색을 보인다는 것은 외세의존의 극치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특히 북측은 노태우 대통령이 방소를 겨낭한 듯 북방외교를 「청탁외교」라고 비난한 뒤 『이는 상대방 제도에 대한 노골적 도전이며 사실상 대화를 통한 통일문제의 해결을 거부하는 분열주의적 입장』이라고 주장했다.
13일의 비공개회담에서도 상대방 기조연설에 대한 양측의 입장이 다시 표명되고 절충이 계속되겠지만 현단계에서 의견접근은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양측의 이번 기조연설은 최소한 서로의 입장을 보다 분명히 파악할 수 있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게 될 것으로 보인다. 상대방의 명백한 의사를 파악한 이상 합의도출의 객관적 상황이 조성될 경우 원칙적 문제에서의 상호양보도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기본틀 마련이라는 우리측의 기본입장과 군사문제해결이라는 북측의 전략이 평행선을 긋고 있으나 이번 회담에서 일부 구체사안에 대한 합의가능성마저 완전 배제할 수는 없다. 특히 우리측은 『즉시 실천가능한 분야에 대해선 합의토록 한다』는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고 있는 만큼 북측만 동의한다면 경의선 복구,비방·중상 중지,직통전화 설치,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 등의 성과가 도출될 수도 있을 것이다.<정광철 기자>정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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