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 일당 9∼7만원까지/공장해외이전… “탈제조업화”/20∼30대 없고 고령·부녀자·학생 주류/「현상금」도 별무효과… 이직 막는데 “급급”사람은 넘쳐나는데 산업현장에선 극심한 인력기근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기업들은 모자라는 인력을 충원하는 것은 고사하고 현재 있는 인력이나마 뺏기지 않으려고 전전긍긍하고 있으며 일부 업체들은 생산라인을 가동할 사람이 없어 조업을 중단하거나 단축하는 사례까지 나타나고 있다. 기술·기능인력의 부족현상이 우리경제의 최대 선결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타업종에 비해 임금수준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건설업조차 일찍이 볼 수 없었던 기능인력난을 겪고 있다.
올들어 신도시건설이 착공된데다 서울지하철 건설공사와 2백만가구 주택건설계획이 본격화되면서 수요가 크게 늘어난 것이 주요인이지만 힘들고 고된 일을 기피하는 풍조가 건설현장으로의 인력유입을 차단하고 있다.
신도시 건설현장에 가보면 20∼30대의 젊은근로자를 구경하기가 힘들다. 갓 기술을 익힌 미숙련근로자라도 용접기나 미장삽만 잡았다하면 일당이 7만∼9만원이나 되지만 이들이 그날 그날 일당이 가장 높은 곳만 찾아다니기 때문에 그나마 수련공을 구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이 때문에 50∼60대의 노인이나 부녀자들이 건설인력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들마저 언제 일당이 높은 딴 곳으로 떠날지 몰라 노동의 질은 차치하고 현장에 남아주는 것만도 고맙게 여긴다.
○내년엔 더 심해질 듯
한 건설업관계자는 『젊은층의 건설공사 기피현상이 계속되면 건설기능이 전수되지 못해 앞으로 건설공사의 질이 떨어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철근공이라해도 제대로 일을 하려면 5∼6년은 걸리는게 보통인데 젊은이들이 이같은 일을 피하고 있어 기능이 전수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건설업계는 그러나 올해보다 내년이 더 사람구하기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특히 신도시아파트의 경우 올해는 토목공사가 진행중일뿐 내년에는 사람손이 필요한 내장공사가 시작되는데 올해보다 2∼3배나 많은 인력을 어디서 구할 방도가 없어 울상을 짓고 있다.
임금이 높은 건설업이 이런 실정인데 임금수준이나 근로환경이 열악한 제조업의 인력난은 말할 나위가 없다.
구로 3공단내 삼덕전자는 매주 화요일마다 간부들이 모여 인력난을 해결하기 위해 각종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지만 어느 하나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지난 여름방학기간중 이회사에서 현장실습을 했던 지방농고의 남녀졸업반학생 20명 가운데 아직 한명도 돌아오지 않고 있다. 학생들은 회사가 마음에 든다며 11월까지 입사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한뒤 귀향했는데 여학생들은 이미 서울의 유명백화점으로 빠져나갔고 나머지도 다른 서비스업체로 진로를 결정한 것으로 밝혀졌다.
콘덴서 제조업체인 삼덕전자는 당장 생산직근로자 30여명이 부족해 현재 20%의 생산차질을 빚고 있다. 지방에 스카우트팀을 보내고 직원들에게 현상금을 내걸어도 효과가 없다.
구인이 안될바에야 이직이라도 줄이기 위해 지난해에는 하후상박으로 임금을 인상,간부들은 임금을 동결하고 생산직은 17%까지 올렸고 근무시간도 상오 6시로 앞당겨 원하는 근로자는 하오 2시에 퇴근할 수 있도록까지 했다.
○직원비위 못 건드려
고병택 생산부장은 『사람은 넘쳐나는데도 제조업기피현상이 더 심해져 갈수록 일할 사람을 구하기가 어렵다』며 『일감이 밀려도 직원의 비위를 건드릴까봐 제대로 독려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라코스떼」상표로 알려진 중견의류업체인(주) 서광의 구로공장은 지난 86년까지만 해도 생산직사원이 8백여명으로 생산라인만 8개인 활기찬 대형공장이었다. 그러나 89년에는 인원이 3백50명선,가동라인 4개로 줄었으며 지금은 2백명이 3개라인을 돌리는 작은 공장으로 바뀌어 버렸다.
이에 따라 생산목표량은 지난해 4백만달러에서 올해는 3백만달러로 줄여잡았는데도 목표달성이 벅찬 상태.
대한교원공제회 과학교구공사 이중훈 경리계장은 요즘 상오에는 사무실에서 경리장부를 작성하다 하오가 되면 공장으로 간다. 접착제·드라이버 등을 들고 지구본·인체모형등 비교적 만들기 쉬운 과학교재의 단순조립을 돕기위해서다. 회사에서 계장급이하 사무직사원도 하오에는 공장에 나가 부족한 일손을 거들도록 했기 때문이다.
○스카우트전도 치열
생산직인력난은 창원·반월 등 주요지방공단과 농공단지는 물론,섬유·신발·전자·완구·인쇄 등 노동집약산업계를 강타하고 있다.
공단게시판마다 「최고대우」「수시접수」를 내건 생산직사원 모집광고로 메워지고 있다. 최근에는 주부사원·야간학생환영·학력불문·50세이상도 가능이란 문안까지 등장,입사문턱이 아예 없어졌지만 오히려 인력은 줄고 있다.
구로공단의 경우 4백여개 제조업체의 근로자가 86년 11만9천여명을 정점으로 89년 10만4천명으로 줄었고 올해에는 9월말 현재 9만2천명 수준으로 떨어졌다. 또한 인력난은 국제경쟁력 약화로 이어져 수출은 2년째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할 전망이다.
삼홍사의 최석기 인사부차장은 『어렵게 일손을 구해와도 한달에 40∼50명씩 나가는 통에 효과가 없다』고 말한다. 세계적인 모형기관차 메이커인 이 회사는 내년 일감까지 받아놓은 상태지만 높은 이직률 때문에 생산은 물론 기술축적에도 차질을 빚고 있다.
지난해 구로공단의 조사에 의하면 한번이상 이직한 근로자는 55.4%였고 이직하고 싶다는 사람도 43.3%에 달했는데 주된 이유는 임금이었다.
이 때문에 인건비도 올라 수익성을 압박하고 있다.
연말성수기를 앞두고 인쇄업계는 을지로인쇄골목을 중심으로 스카우트전이 일어나 일당이 1만1천원 정도에서 1만5천원으로 뛰었다. 섬유회사들은 납기를 대기위해 미싱사를 일당 5만∼6만원에 임시고용하는 일도 다반사가 되고 있다.
중원전자 김종섭사장은 『3년전에 비해 생산성이 30%가량 떨어져 10억원을 투자해 공장자동화를 추진하고 있다』며 『젊은 사람들이 궂은 일 힘든 일을 기피하고 인건비도 올라 차라리 외주를 하는 쪽이 채산성이 나은 편』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인력부족이 계속되면서 기업들은 주부근로자를 비롯,정년퇴직자등 고령자·임시사원·학생아르바이트까지 활용하고 있으며 생산성저하를 막기위해 자동화설비를 서두르고 있다. 또한 생산기지를 동남아와 중남미 등 인력이 풍부하고 인건비가 싼 개발도상국으로 옮기거나 아예 탈제조업화를 서두는등 제조업 공동화현상으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하청복덕방」도 등장
중견의류 수출업체인 동국실업 구로공장의 미싱 2백50대는 지난 8월부터 주인을 잃은채 먼지에 싸여 낮잠을 자고 있다.
노사분규까지 겹치자 동국실업은 공장문을 닫고 주문받은 물량을 퇴직한 장기근속사우가 운영하는 섬유회사 3∼4곳에 맡기는등 사실상 「하청복덕방」으로 바뀌었다.
삼성물산은 올들어 일부를 제외하고 구로공단내 1·2·3공장을 모두 정리하고 경기 안양과 해외로 생산시설을 이전했다. 국내에서는 기술집약적인 고급신사복을 만들고 양말등 노동집약적인 섬유류는 해외로 넘긴 셈이다.
협진양행 주부사원들은 자녀와 함께 공장으로 출근해 사내유아원에 맡기고 근무한다. 주부근로자는 인력난의 해결방법으로 가장 널리 채택되고 있는데 구로공단에만 8천명 정도 취업한 것으로 추산된다. 심지어 60세 이상 할머니 사원까지 등장하고 있어 기술과 생산성이 저하된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김경철기자>김경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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