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제54조는 「국회는 회계연도 개시 30일전까지 예산안을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헌법규정에 따라 계산해보면 새해예산안은 12월2일까지는 국회에서 통과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법정시한은 이미 지나버렸다.금년 정기국회는 장기 공전때문에 1백일간의 회기중 70일간을 까먹었고 지난달 19일부터 가까스로 정상화되긴 했으나 지자제협상과 국정감사에 밀려 예산심의는 거들떠 볼 겨를도 없이 법정통과 시한인 2일을 넘기고만 것이다.
여기서 일반 국민들은 법을 만드는 국회가 이처럼 법을 지키지 않아도 괜찮은가 하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이날도 국정감사를 한답시고 행정부의 각 부처와 기관의 불법·범법행위와 부조리·비리를 추궁하고 있는 국회가 스스로 법을 어기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정말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더욱 한심한 것은 법정시한을 넘기면서도 앞으로 예산심의를 언제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구체적인 일정이 아직 없다는 것이다.
일정도 일정이려니와 예산안을 심의할 특별기구인 예산결산위원회도 구성하지 못하고 있으며 각 상위에서는 첫 단계인 예비심사조차 손을 대지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식으로 늑장을 부리다가는 회기가 끝나는 18일안에 처리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18일이면 불과 2주밖에 남지 않은 셈인데 해야할 일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기 때문이다.
우선 지방자치제 협상을 마무리지어야 할 것이고 보안사·안기부 관계법안과 보안법관계도 시간을 요하는 정치협상 문제이고 민방에 얽힌 의혹은 국정감사에서 파헤친다고 하는데도 오히려 짙어만가는 느낌이다. 이처럼 국회가 스스로 풀어가야할 문제이외에도 11일부터 남북 총리회담이 서울에서 열리고 13일부터는 노태우 대통령의 소련방문이 시작되는 등 국회밖에서도 중요한 일들이 예정되어 있다.
이처럼 대내외적으로 중요하고 바쁜 일에 쫓기다보면 예산안처리가 회기를 넘길 우려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18일이내 처리가 어려우면 편법으로 정기국회 폐회에 이어서 곧 임시국회를 소집해서라도 연내처리를 하지 않으면 새해예산 집행에 커다란 혼란이 일어날 것은 뻔한 일이다.
지금부터 서둘러 강행군을 한다하더라도 졸속심의는 면키 어렵게 되어 있다.
각 상위와 예결위·본회의 등에서 차례로 밟아야 할 절차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데 시간이 쫓기다 보면 제대로 이런 절차들을 거치지 못하고 시늉만내는 날림심의가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야당이 예산심의를 지자제와 연계시키겠다는 방침을 이미 밝혔는데 여기에 추가로 민방의혹조사를 같이 연계시킬 경우 문제는 더욱 복잡해질 것이다. 회기말까지의 짧은 기간에 중요문제를 제대로 만족스럽게 처리할 전망이 서지 않는다면 정기국회 이후의 한두차례 임시국회 소집을 전제로 해서 차근차근 풀어나가는 접근방식을 택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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