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쩍 12월로 들어섰다.올해의 우리 자화상은 어떤 것인가. 총체적 난국에서 범죄·폭력과의 전쟁까지,온통 이지러진 모습이다. 충격·비분·개탄이 이어지는 가운데 민생은 희망과 목표를 잃고 방황하고 있다. 좀체 중심이 꽉 잡히지 않는다.
구국적 차원의 결단이라고 큰소리 치던 3당 통합 이후,정치와 경제는 더욱 어지럽게 흔들리면서 총체적 난국에 부딪쳤다. 이 난국이 제발로 들이 닥쳤다기보다 끌어 들이고 만들어 냈다고 함이 오히려 적절한 표현 같다. 그래서 난국은 위기니 아니니 하는 오진 오판 소동을 벌이다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그 사이에 민생은 무서운 불안에 휩쓸렸다. 반인륜·반도덕의 범죄와 폭력이 몹쓸 전염병처럼 창궐한 것이다. 가정파괴범 인신매매 떼강도 맹목적 살인 등의 흉포와 잔인함이 흘러 넘쳐 가정과 사회를 공포속으로 밀어 넣었다. 범죄자의 흉악성은 어린 소녀의 생명을 생매장할 만큼 극에 달했다. 국민학교 어린이가 범죄가 무섭다고 자살한 현실 앞에선 숨이 꽉막힌다.
더욱 고약한 것은 폭력의 깊은 뿌리다. 경찰이 기를 쓰고 잡아들여도 여간해선 뿌리가 뽑힐 것 같지가 않다. 웬 폭력배가 그리도 득실 거리는지 놀라고 또 놀랄 따름이다.
인천과 대전에서 드러난 폭력의 실상은 매우 상징적이라 할만하다. 국회의원이 깡패의 석방을 탄원하는가 하면,판·검사가 합석해 술잔을 나눈다. 이쯤되면 입법 사법 행정의 삼권이 검은 손과 두루 닿았다 해도 변명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려니 하고 쉽게 보아 넘길 일이 아니다. 폭력의 기업화는 알려진 사실이라고 해도 「권력과 유착」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사회병리에 대한 우려와 개탄은 나날이 높아간다. 그럼에도 개탄은 개탄으로 끝날 뿐,금방 망각에 묻혀버린다. 충격적 사건이 터질때만 분노하고 아우성이 크나,그다음 어떻게 하자는데엔 침묵이 아니면 목소리가 줄어든다.
물에 빠진 사람을 보고 서로 살려주라고 소리만 지르지 정작 뛰어 들 엄두는 못낸다. 위기의 본질과 심각성이 여기에 숨겨져 있다. 흔히 국민이 모두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실제로 막연하고 공허한 주장이다. 강한 중심세력이 나오지 않으면 힘이 뭉쳐지지 않는 법이다.
오늘의 위기가 정치의 무력·혼란과 도덕성의 붕괴와 황폐화로 인한 것임은 공통의 인식이 되었다. 공직윤리와 사회정의의 부재,개인양심의 소멸이 불안의 밑바닥에 깊게 깔려 있는 것이다. 문화방송이 창사특집으로 조사한 여론도 국민윤리의식에 대한 우려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의 86%가 「걱정되는 상황」이라는 응답이다. 도덕성의 위기는 이제 책임따지기로 풀어질 과제가 아님이 밝혀지고 있다.
사람의 마음은 의탁처가 있어야 안정을 찾는다. 쌓이고 쌓인 불신이 이것을 송두리째 앗아 갔다. 정치와 정부는 도덕성 회복에 나설 자격도 없고 누가 따르지도 않는다. 집단 이기주의의 만연으로 특정계층이나 사회단체에도 믿음이 안가는 딱한 실정이다. 그렇다고 절망할 수는 없다.
몇가지 가능성은 짚어 볼 수 있다. 그중의 하나로 종교를 꼽아본다. 종교가 가르치는 사랑과 자비 즉,인간애가 도덕의 원천이며 근간이다. 우리네 종교열이 비록 왜곡된 측면은 있으나 올바른 길을 트면 새롭게 기대를 걸어 볼만하다.
도덕성 확립을 위해 종교에 대한 사회의 기대는 크다. 오늘의 종교현실엔 물론 모순이 많다. 물질주의와 기복신앙의 팽배로 사회악과의 대결은 미지근한게 사실이다. 신도에 의해 고소당하는 성직자,보따리 선교라는 과소비 명단에 오른 성직자들은 슬픔과 실망을 안겨준다. 현실의 도피처로 여기는 신앙도 바람직하지 않다.
그래도 우리 현실에서 사회악과 싸울 중심세력은 종교가 맡아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만한 가능성은 이미 확인되었다. 기독교의 사랑의 쌀 모금운동과 천주교의 「내탓이오」운동은 차원 높은 도덕성 회복의 움직임으로 받아들여 무방할줄 안다.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종교계의 목소리도 우렁 우렁하게 들린다. 「사회구제활동이나 환경보전 등 교회가 과거 민주화에 쏟았던 열정을 이제는 이런 분야로 돌려야 한다」(천주교 전안동교구장 두봉 주교)고 말한다.
『성장을 늦추더라도 도의심 앙양을 국책의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는 일대 국책 전환운동을 펴나갈 때』라고 불교의 송월주 스님은 심려있는 제안을 던진다.
이러한 결의가 도덕성 회복의 중심세력을 이룰 수 있다면 우리는 내일의 희망을 되찾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희망이 있다면 불안과 무력증은 두려워 할바가 아닐 것이다.
세모풍경에서 자선냄비는 화로처럼 따뜻한 느낌을 준다. 자선냄비의 체온은 바로 우리 도덕수준의 척도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지금은 진심으로 인간이 그리운 계절이다. 1990년의 자화상이 조금은 밝아졌으면 한다.<논설위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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