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문철폐 대한 시각변화 반영/기술이전·역조시정 간극 확인/동북아정세 급변 대응 협력체제 조율엔 성공이틀간 일정으로 열린 제15차 한일 정기각료회의가 27일 폐막됐다. 이번 회의는 전체적으로 볼 때 급변하는 국제 및 동북아정세 아래 한일 양국이 지향해야 할 공동협력의 필요성을 서로 확인했다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본인식에도 불구하고 산업기술협력 등 각론의 측면에서는 여전히 시각차를 보여 한일관계에 있어 당위와 현실간의 간극을 재확인케 하기도 했다.
이번 회담에서 도출된 중요한 구체성과중 하나는 재일동포 2세에 대한 지문날인제의 철폐. 우리측이 그동안 끈질기게 주장해온 지문날인제 철폐를 일본측이 이번에 선뜻 받아들인 것은 한일관계가 그만큼 발전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이 우리측 요구를 수용한 배경에는 ▲내년 1월초로 예정된 가이후 일 총리의 방한 분위기조성 ▲일·북한 수교교섭에 따른 대한 여건조성 필요성 등 복합적 요소가 있을 수 있으나 기본적으로 일본의 한국에 대한 시각이 변화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즉 유럽공동체(EC)통합,동구변혁,동서 탈냉전,우루과이라운드협상 등 급변하는 세계 정치·경제 질서속에서 경제대국으로서 영향력을 증대시키려는 일본으로서는 이웃국가인 한국의 적극적 협조없이는 이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힘들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국이 국력신장과 함께 북방외교의 성공으로 소련 및 중국과의 관계를 급속하게 개선시켜감에 따라 이러한 일본의 인식은 더욱 증폭됐을 것으로 분석된다.
이번 협상에 관여했던 정부의 고위당국자는 『수년전만해도 일본이 우리의 지문날인 철폐요구를 전적으로 수용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을 것』이라면서 『이는 기본적으로 한국에 대한 일본의 시각이 변화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문날인제 철폐에 대한 구체적 실시시기는 아직 미정으로 여전히 양국간 협의의 대상이다. 일본측은 대체수단을 강구하는대로 국내법을 개정,시행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으나 대체수단 마련시기가 일본측 표현대로 「조속히」될 것인지는 더 지켜보아야 할 일이다.
또한 일본은 대체수단으로서 호적과 유사한 가족등록제,사진,서명 등을 이용하는 방안을 검토중인데 대체수단 자체가 또다시 인권시비에 휘말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어 지문날인문제가 완전해결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밖에 일본 국내법 개정 이전에 16세가 되는 재일동포2세에 대해선 시한연장등의 방법으로 처벌을 배제한다는 것이 양국간의 묵시적 합의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또한 한일 양국이 원만한 해결을 위해 계속 협의해야 할 문제이다.
이같은 일부 미진한 부분에도 불구하고 지문날인제 철폐가 그 상징성에 비추어 이번 각료회의의 최대성과중 하나라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반면 국·공립 초·중·고교 교원 및 지방자치단체 공무원 채용 등 사회생활상 차별해소 문제에 있어서는 거의 진전이 없었다. 사회생활상 차별해소문제도 지문날인제 등 상징적 차별철폐 못지 않게 재일동포들의 오랜 숙원인 만큼 지문날인제의 빛에 가려져서는 안된다는 게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한일 양국은 지문날인제 철폐등 재일한국인 문제에서의 부분적 성과와는 달리 산업기술협력등 경제분야에서는 그다지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이번 각료회의에서 양국은 차관보급을 수석대표로 하는 한일 무역산업기술 협력위원회의 설치에 합의하는 등 일부 분야에서 의견접근을 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일본측은 우리측의 적극적인 기술협력 요청에 대해 대부분 구체적 대답을 피한채 기본입장을 고수했다.
특히 일본은 무역불균형 해소문제와 산업기술 이전문제에 있어 미온적인 태도를 나타내 양국간 우호협력에 대한 당위성 인식이 현실적 실천으로 이어지기에는 아직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우리측은 무역불균형 해소문제와 관련,일본측에 ▲한국산 상품 수입확대 ▲한국의 대일 수출촉진활동 지원 등 무역확대균형 노력을 촉구했다. 이에 대해 일본은 양국간 무역불균형은 구조적인 것으로 최근 한국에 수출된 일본산 설비 등이 본격 가동되면 점차 해소될 것이라는 식의 소극적 태도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측은 또 산업기술 이전문제에 대해서도 민간기업간의 기술이전문제에 정부가 개입하기는 어렵다는 종래 입장을 되풀이 했다. 이에 대해 우리측은 일본 정부가 민간기업을 적극 지도하고 세제·금융 등 지원책을 펴면 기술이전의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으나 일본측으로부터 특별한 반응을 얻지 못했다.
경제관계자들은 경제분야에 있어 이번 각료회의는 「말의 성찬」이었다는 비판을 하기도 한다.
한일 양국은 동북아질서 재편과 관련한 외교문제에 있어서는 남북 관계개선이 한반도안정에 필요하다는 등 전체적으로 공통된 인식을 확인했으나 소련과의 관계 등에 있어서는 다소 입장차이를 노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나카야마·다로(중산태랑) 일 외무장관은 특히 우리측의 대소 경협에 깊은 관심을 표시하면서 한소 경협에 있어 일본측과 긴밀한 협의를 해줄 것을 최호중 외무장관에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양국은 그러나 이번 각료회의에서 향후 협력체제의 조율에 대체로 성공한 것으로 평가되며 이 성과는 내년 1월초 가이후 일 총리의 방한으로 더욱 증대될 것으로 기대된다.<정광철기자>정광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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