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가 중부유럽의 획기적인 군비축소협상에 성공한 뒤를 이어,한반도의 군비축소가 조심스럽게 논의되고 있다. 한반도의 군비축소 문제는 아직 공식논의 단계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있지만,상당히 정치적 색채가 짙은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정치적 색채가 짙다는 것은 세계에서도 군사력이 가장 밀집해 있는 이 지역에서 실질적인 군사적 대결의 점진적 감축보다는 하루아침에 「비핵화」부터 이루자는 논의가 오가고 있음을 말한다.
최근의 움직임으로는 지난 9월 미국하원 외교위원회의 아시아·태평양소위원회 위원장인 솔라즈 의원이 「한반도의 비핵화선언」에 관해 언급한 것을 들 수 있다. 솔라즈 의원의 한반도 비핵화 제안은 핵시설의 국제적 검증을 거부하고 있는 북한에 대한 「반대제의」로 제기된 것이었다.
지난 22일 서울을 방문중이었던 소련 대통령위원회의 메드베데프 위원이 내놓은 「한반도 비핵지대화안」은 형식상 아시아·태평양지역 군비축소 구상의 일부로 돼 있었다.
이런 움직임에 대해 최호중 외무장관은 주변강대국이 핵무기를 갖고 있는 상황하에서 『한반도만 일방적으로 비핵지대화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24일 비판했다. 우연히도 이튿날인 25일 평민당의 김대중 총재는 광주공항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한반도 비핵지대화를 긍정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연합통신 보도). 김 총재가 『북한에 핵무기를 만드는 구실을 주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 대목은 솔라즈 의원과 비슷한 입장이라 하겠다.
지금 한반도의 군비축소가 비핵화문제라는 형태로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같은 한반도 비핵지대화 제안이긴 하지만,제각기 한반도의 범위를 뛰어넘는 국가적 전략과 관련지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특히 소련의 경우 『주한미군과 핵무기가 긴장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한반도의 힘의 균형보다 「주한미군의 핵무기」를 밀어내는 데에 초점을 두고 있다. 솔라즈 의원도 한반도에 긴장이 있는 한 『주한미군은 있어야 한다』는 기본인식을 강조하고 있다.
오랜 평화노력을 거쳐 한반도 주변정세가 안정된다면 한반도의 비핵화를 반대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상당히 긴 협상과 상호 신뢰회복이 필요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 대전제는 북한이 「남조선 해방노선」을 공개적으로 포기하고,국내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세계적 흐름으로 봐서 우리가 한반도의 긴장완화방안을 보다 폭넓게 생각할 만한 상황에 있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그만한 「과정」없이 성급한 비핵지대화론이 나오는 것은 자칫 일방적인 강대국논리가 아니면,땀흘리지 않고 열매를 따보자는 식의 주장이 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