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분단이 빚은 비극/60대 빨치산 출소후 자살(등대)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분단이 빚은 비극/60대 빨치산 출소후 자살(등대)

입력
1990.11.25 00:00
0 0

지난 21일 상오6시께 경남 통영군 한산면 해덕 진주양식장 뒤편 야산에서 60대 노인이 나뭇가지에 나일론 끈으로 목매 숨진채 발견됐다.이 노인은 35년간의 긴 옥살이 끝에 지난해 10월 청주 보안감호소에서 출소한 정대철씨(64)로 밝혀졌다.

평북 용천 출신인 정씨는 6·25전쟁 당시 지리산에서 빨치산활동을 하다가 51년 체포돼 21년 6개월을 교도소에서 복역하고 76년 대전교도소를 나왔으나 곧바로 사회안전법이 발효되는 바람에 보호감호처분을 받고 다시 14년 1개월의 감호소 생활을 한 끝에 지난해 9월 사회안전법이 폐지됨에 따라 자유의 몸이 됐었다.

삶의 절반이상인 35년 7개월을 철창속에서 보내야 했던 정씨는 출소후에도 보안관찰대상자로 분류돼 출소직후 10개월 동안은 부산 갱생보호소로 거주지가 제한됐다.

그 기간에 감옥에서 틈틈이 배운 침술과 지압술로 생계를 유지했던 정씨는 지난 10월초 바다를 건너 한산도로 옮겨가 과수원 농장에서 날품팔이로 일해왔다.

정씨는 16절지 3장에 빼곡히 쓴 유서를 통해 전향을 거부하고 평생 공산주의자의 길을 선택,형극의 길을 걸어온 삶을 회고하고 반성했다.

정씨는 유서에서 『당에 대해 무수한 과오를 범했고 이를 씻을 길이 없다』며 평생 사상과 이념에 투철했던 공산주의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면서도 『남북교류가 잘돼 북에 남아있는 어머님,형님,여동생과 만나게 될 날을 꿈꾸어 왔다』고 인간적인 괴로움을 털어놓았다.

정씨는 『살아서 이룬것 없었으니 죽어서나마 한그루 나무의 밑거름이 되고 싶다』며 『내가 죽은 자리에 그대로 묻어주고 잣나무 한 그루를 심어달라』고 마지막 소원을 밝혔다.

그러나 이같은 소원과 달리 정씨는 유족이 없고 죽은 자리가 다른 사람의 소유라는 이유로 마을 공동묘지에 묻혔다. 정씨의 주검은 청주 보안감호소에 10년간 함께 있었던 서준식씨(42)가 수습했다.

서씨는 『분단 시대를 고통스럽게 헤쳐온 정씨의 죽음은 우리 시대가 낳은 역사적 비극의 전형』이라고 외로웠던 빨치산의 최후를 애도했다.<이재렬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