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철보신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릇에 물이 차면 흘러 넘치게 마련이다. 절정에 오르면 내리막 길을 터벅터벅 걸어야 한다. 한고조 유방은 천하의 3걸로 장량과 소하 그리고 한신을 꼽았다. 3걸의 말년은 저마다 다르다. 한신은 주살을 당했고 소하는 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오직 장량만은 신선에 몸을 기탁하여 세상을 버렸다. 공명과 영리 따위를 헌 신짝처럼 여겼기 때문이다. ◆권력의 드라마는 본시 험하고 허무하다. 중국의 한나라를 창건함에 유방이 기린 3걸의 공로는 지대하다. 장량의 슬기,소하의 인품,한신의 병술이 없었다면 천하통일의 구도는 아주 달라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3걸의 운명은 판이하게 갈렸다. 요즘 표현을 빌리자면 「파워 게임」의 귀결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관계에선 끝내기가 중요하다. ◆백담사에 은둔중인 그 분이 입산한 지가 어느덧 2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국회 청문회에 출석해서 「5공 변명」을 한 것 말고는 끈기있게 산사에 묻혀 지냈다. 세상은 그를 망각에 묻어주지 않았다. 천불 만불이 났다는 초기의 번민을 가라 앉힌 다음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스스로 「반중」을 자처하며 설법으로 울분을 달랜 것 같다. 설법중엔 5공의 업적(?)을 은근히 자랑하는 대목이 있다는 소리도 들린다. ◆들려오는 말들이 너무 헤프지가 않나 하는 느낌이 든다. 5공에 대한 인식차가 매우 크다. 그로서는 몹시 애착을 지니고 있을지 모르나 아직까지 생생한 그 시절의 혐오감은 별로 깨닫지 못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고개를 자꾸 치민다. 당시의 영화가 꿈에 어른거릴지 모르겠으나 잊을 것은 잊고 참회할 일은 참회해야 마땅할 것이다. ◆세상의 이목이 아직 차갑다. 백담사 2년을 새삼 들먹이는 것이 하산작전의 탐색전이 아니냐 하는 시각도 없지 않다. 그럴수록 그도 조용히 지내는 게 명철보신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되기도 한다. 말년을 신선과 노닐면서 보낸 장량의 예지는 두고 새겨볼 만하다. 망각의 시간은 인내로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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