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축ㆍ적대청산 등 가시적 성과/새 안보기구ㆍ경제격차 과제로/미·소 패권주의 잔존·유럽만의 배타성도 노출탱크와 대포를 녹여 쟁기와 낫을 만드는 시대가 진정 유럽에 도래한 것인가. 소련과 동구의 민주화와 독일통일을 이룬 유럽이 새로운 유럽구조 건설을 모색키 위해 지난 19일부터 파리에서 개최한 제2차 전유럽안보협력회의(CSCE)가 21일 막을 내렸다. 바르샤바기구는 탱크 7만2천7백대,장갑차 5만8천대,대포 7만4천3백문,헬기 2천3백대,전투기 1만3천1백대를 줄이는 엄청난 재래식무기 감축조약을 서명하면서 그들과 나토는 더이상 적이 아니라고 선언했다.
CSCE는 또 새로이 통일된 유럽건설의 초석이 될 수단을 갖도록 ▲프라하에 사무국 ▲빈에 분쟁방지센터 ▲바르샤바에 자유선거 감시국을 각각 설치키로 하는 한편 프랑스측 제의를 받아들여 CSCE의회도 창설키로 했다.
이번 회의에서는 정상회담을 격년제로 개최하기로 하고 92년 헬싱키에서 첫 회담을 열며 외무장관 회담을 연 1회이상으로 하되 첫 모임은 91년 여름 베를린에서 갖기로 했다. 즉 정책협의가 가속화되는 것이다.
CSCE는 이어 회원국간의 관계가 존경과 협력에 기초하고 위협과 무력을 쓰지 않으며 분쟁은 평화적 수단으로 해결한다는 헬싱키헌장을 재강조했다.
이와 함께 정부의 유일한 형태로서의 민주적 가치의 존중과 시장경제를 향하는 신생민주국가들에 대한 전방위 협력도 약속했다. 이 지역 최대의 휘발성을 가진 인종문제와 관련,소수 민족회의를 91년 7월 4민족 4언어가 공존하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갖기로 한 것도 뜻깊다.
당초 이번 회의는 통독을 승인하는 최후의 과정으로서의 국제무대가 될터였다.
각국 지도자들은 통독을 유럽 분단극복의 상징으로 한결같이 찬양하고 유럽의 새 질서에 대한 중요한 기여라고 평가했다.
미테랑 불 대통령의 개막사처럼 이번 회의는 분명 유럽사에 「한 시대의 종언이자 많은 희망을 품게 마련인 시작」이다.
그러나 CSCE의 앞날은 순탄치 만은 않을 것이다. 회원국들의 엇갈린 이해와 폐쇄적인 역내클럽의 개방압력 등 숱한 과제가 각국 정상들의 발언에서도 선명하게 드러났다.
첫번째 과제가 새로운 안보구조의 정착이다. 이번 회의의 주창자로 거의 모든 지도자들의 찬사를 받은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은 CSCE가 나토와 바르샤바를 대체할 범유럽안보구조로 바뀔 것을 오래전부터 희망해 왔다. 「미소 관계는 적이 아닌 협력자」라고 선언한 그는 「바」기구의 신속한 변화를 밝히면서 나토에도 상응한 변화를 기대했다. 안탈 헝가리 총리는 「바」기구가 92년중으로 해체될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륙유럽국들의 CSCE에 대한 범유럽기구화 희망과는 달리 미 영 등 앵글로 색슨의 입장을 대변하는 영국은 과도기에서 전쟁을 방지하는 억지력을 강조하고 북미와 유럽을 연결하는 나토의 유지를 희망했다. 이럴 경우 소련과 동구의 안보가 뿌리내렸던 「바」기구가 없어진 채 소련을 여전히 가상적으로 삼는 나토는 「정체성의 위기」를 겪으면서 오히려 유럽의 안정과 단합을 해칠 가능성이 크다. 고르바초프는 신설될 분쟁방지센터가 범유럽안보기구로도 바뀔 것을 희망했으며 앞으로 2년간을 신설기구의 시험기로 보았다.
둘째가 유럽내의 「남북문제」와 이를 해소할 경제협력 요구. 특히 CSCE역내의 선진국 클럽인 EC에 대한 개방압력이다.
『EC도 CSCE도 보다 큰 유럽구조의 건설에 기여할 것』으로 보는 자크·들로르 EC위원장은 나토처럼 폐쇄적 태도가 아닌 점진개방의 의사를 밝히기는 했다.
서구가 동구를 원조하지 않을 때 제기된 철의장막 대신 「복지의 장벽」(안탈 헝가리 총리의 말)이 생길 것은 분명하다. 유럽마저도 A급 유럽과 B급 유럽으로 갈린다. 때문에 원조는 물론 밀접한 정치적 대화와 경제통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정치·경제의 불안속에 신생민족주의가 회생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압력은 즉각 서구로 밀려온다. 때문에 집단적 노력에 의한 격차 해소가 주요 이슈로 대두되는 것이다.
셋째과제는 패권주의의 청산이다. 일종의 축제인 이번 회의에서 미국은 역외문제인 페르시아만 결의안을 유도하려다 실패했고 소련은 발트3국의 옵서버 참가에 거부권을 행사,제국해체의 가속화를 원치 않음을 드러냈다. 소련은 유엔에도 복수국가(우크라이나·백러시아)로 가입돼 있어 CSCE도 그렇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지적이다.
미 소의 패권을 종식시킨 CSCE는 이점에서 만장일치의 모순을 드러냈다.
종교와 언어를 공유한 문화적 공동체이기도 한 유럽은 너무 자주 전쟁에 휘말려 왔다.
불신을 못씻은 냉전논리와 기득권 집착은 「유럽공동의 집」「유럽국가연합」의 땅고르기 작업을 막고 있다. 정치가의 구호와 국민이해의 불일치도 변수다. 동·서구 「2가지 속도」의 유럽통합에 우려는 있으나 유럽은 분명 통일되고 있다. 문제는 유럽이 자신에만 집착할 때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는 어떻게 대처하는가가 숙제로 남아 있다. 케야르 유엔사무총장도 이번 회의기간중 바로 이 점을 가장 심각하게 우려했다.<파리=김영환특파원>파리=김영환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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