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구인 「망명」 불허… 비자 요구발트해로부터 아드리아해까지 드리워졌던 철의 장막이 동유럽의 민주화로 사라진 이후 서유럽국가들에 의해 새로운 장벽이 세워지고 있다.
최근 소련등 동유럽국가로부터 이주민이 급증하는 사태가 빚어지자 서유럽국가들이 이들의 이주를 제한하는 조치를 취하기 시작,유럽 대륙을 또다시 동서로 갈라놓고 있다.
지난해 동독의 호네커 정권을 무너뜨린 동독인들의 대규모 탈출을 보면서 많은 서방국가 사람들은 샴페인을 터뜨리며 이를 환영했었다.
그러나 지난해 1백20만명의 동구인들이 서방으로 탈출한데 이어 올해에도 2백만명 이상의 이주민들이 몰려들 것으로 예상되자 서방국가들은 국경을 닫기 시작했다.
많은 서유럽국가들은 서방으로 이주하려는 동구인들에 대해 입국비자를 요구하는 한편 이민규제 조치를 강화해 가고 있다.
이미 인구가 포화상태에 이른 서유럽국가들 대부분은 통상 이민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서방에 친척이 없는 이주민들은 「정치적 망명」이라는 편법으로 서유럽으로 입국해 왔다.
그러나 동구 공산정권이 붕괴되자 서유럽 각국은 동구탈출인에게 자동적으로 정치적 망명을 허용하는 제도를 폐지해 버렸다.
2차대전 후 5백만명의 난민을 받아들이고 동구국가에 대해 정치 망명자의 출국을 촉구했던 독일은 이제 동구인들에게 비자를 요구하고 있다.
당연히 입국 심사절차도 강화해 올해 망명신청자중 0.8%만이 망명을 허용받았다.
지리적으로 이주민들의 첫 기착지가 되는 오스트리아는 지난해 자유를 갈망하는 동독인들이 넘었던 헝가리와의 국경지대에 국경순찰대를 배치,10일만에 5백여명의 불법이주민을 체포해 헝가리로 되돌려 보냈다. 동구인들의 서방탈출 러시 초기에 이들을 저지했던 것은 체코ㆍ헝가리 등의 국경수비대 였으나 이제는 서방국가들의 국경수비대가 이들의 이주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서방국가로의 입국이 허용되지 않자 이들은 동구에서 민주주의가 가장 활발한 체코와 헝가리에서 갈 곳을 정하지 못한 채 방황하고 있다.
불가리아ㆍ루마니아ㆍ러시아 출신이 대부분인 이주민들은 동구주둔 소련군이 철수하면서 버리고 간 허물어져 가는 막사나 탱크 은폐시설에 임시거처를 마련하고 소련군의 탱크훈련으로 포탄자국이 깊이 파인 황량한 땅에서 가까스로 끼니를 이어가고 있다.
동구 이주민들이 체코와 헝가리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에 빠지자 양국 정부는 난민수용소를 설치해야만 했다.
소련군의 막사에 설치된 이 난민수용소들의 시설은 대부분 체코나 헝가리의 기준에 비춰보아도 형편없는 수준이다. 소련군이 철수하면서 갖고 갈 수 있는 것은 모두 가져가 버렸기 때문이다.
이러한 악조건에도 불구,이들은 고국으로 돌아가기를 원치 않는다. 돌아가도 현재의 상황보다 나을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공산독재가 붕괴됐는데도 더욱 악화되고 있는 경제난과 정치적 불안이 동유럽인들의 서방이주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동구인들의 서방이주 사태는 게르만족의 대이동이나 콜럼버스 이후 유럽인들의 아메리카대륙으로의 대량이주에 비유되고 있는데 서유럽 각국들은 이들을 무턱대고 받아들일 경우 심각한 사회문제를 유발할 것을 우려,이처럼 「인의 장벽」을 쌓고 있는 것이다.<남경욱기자>남경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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