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ㆍ북방외교 여파 “재조정기”/탈냉전후 안보밀월 한계도달/80년대 대미 자주의식도 한몫/“어차피 겪을 홍역”… 정부선 감정갈등 비화될까 우려통상문제를 중심으로 한미간 불협화음이 증폭되고 있다. 우리의 과소비억제운동에 대해 미국측이 새로운 형태의 무역장벽이라며 이의를 제기함으로써 「내정간섭」 논란이 빚어지는가 하면 주세인하 문제ㆍ관세율인하예시제 등 각종 통상현안이 한미간에 노출되고 있다.
또한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개정 등 양국간 현안이나 대외정책에 대한 협조문제 등에 있어서 사안별로 뚜렷한 입장차이가 노정되고 있다.
이같은 한미 양국간 난기류가 이번에 처음 발생한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최근의 양국간 견해차는 과거에 비해 통상ㆍ정무 등 광범위한 범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데 특징이 있다.
특히 한소 수교 등 한반도 주변정세 변화와 우리나라의 국력신장이라는 객관적 조건 아래 이같은 현상이 표출된다는 점에서 양국 관계의 재조정으로까지 비쳐지는 것이다.
한미 관계의 최근 변화는 기본적으로 80년대 이후 급성장한 우리의 경제규모와 세계적 탈냉전 분위기에 힘입은 북방외교의 성공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82년 처음으로 우리나라가 대미 흑자를 기록하고 뒤이어 무역흑자국으로 선회하면서부터 미국의 대한 통상압력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83년 컬러TV 덤핑판정에서 출발한 미국의 통상압력은 개발도상국으로서 각종 무역특혜를 누려오던 우리나라에 상당한 시련을 안겨주기도 했다. 통상외교라면 섬유쿼타협상 정도로만 생각해오던 우리로서는 파상적으로 밀려온 미국측의 시장개방요구에 위기감을 느낄 정도로 당황했던 것도 사실이다.
미국의 이같은 대한 통상압력은 우리나라를 더이상 개발도상국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미국내 인식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아직 충분한 자생력을 키우지 못한 우리에게 성장의 장애로 작용할 수도 있으나 동시에 한미 관계가 통상에 있어서 만큼은 1대1의 대등한 관계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통상부문에 있어서 양국 관계의 변화와 함께 85년 고르바초프 등장 이후 급변한 국제정세는 양국간 정치ㆍ안보분야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한 것으로 보인다. 한소 수교,한중 관계개선,남북 및 일ㆍ북한 관계개선 움직임 등 한반도 주변정세의 변화는 앞으로 동북아지역의 안보환경을 크게 변경시킬 것임에 틀림없다. 즉 한반도지역에서의 긴장완화는 종전 냉전시대의 한미 안보관계를 상대적으로 퇴색시킬 가능성이 큰 것이다.
이같은 대내외적 여건변화에 따라 한미 관계의 중심축은 기존의 안보분야에서 통상부문으로 넘어갈 것이 분명하며 그 초기단계에 들어섰다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통상부문에서 한미 양국이 1대1의 수평적 관계를 유지한다 해도 정치ㆍ군사 분야에서는 아직 우리의 대미 의존도가 높은 것이 사실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의 안보우산은 여전히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정치ㆍ군사 부문의 양국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80년대 이후 일기 시작한 대미 자주의식은 정치ㆍ군사 부문에서의 양국 관계에 영향을 미쳤으며 이러한 자주의식은 한반도 주변정세 변화 등과 맞물려 정치ㆍ군사 분야에서도 우리의 목소리를 내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한미 관계는 과거의 안보 중심에서 통상 중심으로 이전되는 동시에 양쪽 분야에서 모두 수평적 대등관계로 변모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양국 사이에 최근 빚어지고 있는 불협화음은 이 재조정 과정 속에서 나타나는 과도적 현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정부는 그러나 이러한 불협화음이 자칫 한미간의 심각한 갈등이나 분쟁으로 비쳐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안보 및 통상부문에서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한미 양국의 불협화음이란 어차피 극복될 수밖에 없는 일시적 홍역인데도 양국 사이의 감정적 갈등으로 잘못 비쳐지는 것은 양국 관계의 미래에 바람직하지 않다는 인식이다.
특히 정부는 양국간 통상규모가 커질수록 마찰은 늘어나게 되며 이는 보편적이고도 당연한 국가간 관계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최근의 통상압력이 지난 86년부터 88년까지 미 통상법 301조를 둘러싼 양국간 통상마찰에 비해볼 때 오히려 경미한 편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
정부는 또 대미흑자국인 우리로서는 고객인 미국의 문제제기를 감정적으로 무조건 배격할 경우 국가적 차원에서 손해를 입게 될 수도 있음에 유의하고 있다. 즉,우리도 경제규모가 커진만큼 불공정하다는 비판을 피하면서 적극적인 통상정책을 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기업들이 더이상 온실 속에서의 성장을 기대하지 말고 자생력을 키워가야 한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한미 양국간에 일고 있는 난기류는 따라서 앞으로 보다 대등한 관계를 위한 껍질을 깨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정광철 기자>정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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