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저지르고 뭉개기/김창열칼럼(토요세평)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저지르고 뭉개기/김창열칼럼(토요세평)

입력
1990.11.17 00:00
0 0

지난번 민자당 내분이 한 고비에 올랐을 무렵,김종필씨가 이런 말을 했었다.『저질러 놓고 뭉갠다』

3김 퇴진론에 곁들인 이 말은 김영삼씨 한사람의 정치행적을 겨냥한 것이었지만,그 효과는 3김 퇴진론과 마찬가지로 누워서 침을 뱉은 것이나 다름 없는 듯했다. 「저지르고 뭉개기」는 김영삼씨 한 개인의 특기가 아니라,김종필씨 자신이 떠받치고 있는 6공 현체제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이라 할 수 밖에 없고,그럴 경우 김종필씨 또한 「저지르고 뭉개기」의 흠을 면할 길이 없을 것이 때문이다.

저질러 놓고 뭉갠다­는 말은 그런 뜻에서 명언에 가깝다. 분명 「저지르고 뭉개기」는 6공 3년의 오늘을 해독하는 열쇠 말이라 할만 하다.

무엇보다도 민자당의 오늘이 이말 한마디로 풀이가 된다. 1노3김의 「저지르기」로 탄생된 그 큰 덩치는 지금 계파싸움을 「뭉개기」만 해온 탓으로 속이 비어 버렸다. 또 다른 「저지르기」의 산물인 내각제 합의각서는 합의 당사자 한편의 「뭉개기」로 유야무야가 됐다. 아직 현안으로 남아 있는 지자제 실시문제도 경위는 같다. 감당 못할 일을 합의해 주고,되돌아서서는 「뭉개기」로 일관해,법정시한을 두차례나 넘기며 오늘에 이른 것이다.

이들 몇가지 예에서 보는 6공형태의 특징은 「저지르기」의 느닷 없음과 「뭉개기」의 어물어물에서 찾을 수가 있다. 느닷없음의 밀실성과 어물어물의 무책임성이 그 특징인 것이다.

요즘 말이 많은 민방문제도,따지고 보면,그 뿌리가 6공 특유의 「저지르고 뭉개기」에 있다고 할 수 밖에 없다.

방송제도에 관한 한,그 「저지르기」의 시초가 5공의 언론통폐합과 언론기본법에 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 「저지르기」에 6공으로서의 응당한 몫이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것은 6공들어 새로 제정한 87년 방송법에 언론통폐합과 언론기본법의 뼈대를 그대로 유지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5공의 「저지르기」와 6공의 「뭉개기」가 합작하여 만들어 낸 것이 6공초의 방송제도인 셈인데,여기에서 생긴 마찰이 적지 않았음은 다 아는대로다. 이에 대처하느라 정부가 짜낸 것이 민방도입등의 방송제도 재개편이며,이를 위한 방송법의 날치기 개정,민방설립의 졸속 추진 등의 「저지르기」가 겹쳐서 새로운 말썽을 빚어낸 것이다.

이 경위에서 민방의 당부나,민방 주체 선정의 적부는 일단 제쳐 두 더라도,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지적해둘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것은 지금 정부가 떠 안은 시비의 발단이 87년 방송법 제정의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데 있었고,그 잘못은 언론통폐합­언론기본법의 청산을 「뭉개기」로 한데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언론통폐합­언론기본법의 잘못을 제대로 청산하는 바탕위에서 민방제도의 가부등 방송제도의 기본을 그때 좀더 면밀하게 검토했어야 하는 것이다.

사실은 이처럼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기 때문에,이번 민방도입의 두번째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는 일면이 없지 않다. 그 잘못은 방송사를 상대로한 요즘 일련의 언론통폐합 송사가 잘 드러내 보이고 있다. 정부로서야 그런 송사가 있건 없건 민방설립을 기정 방침대로 추진한다고 하겠지만,한 두건이 아닌 이들 송사의 향방에 따라서는 정부의 방송제도 구상에 차질이 생길 수가 있다. 자칫 방송제도의 재재개편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정부로서도 이들 송사를 방송사와 사인간의 분쟁이라 「뭉개기」만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차라리 잘못된 첫 단추를 다시 살펴야 옳은 것이다. 이 요청은 방송정책의 차원을 넘어선 정의실현의 명제와 관련되기 때문에 더욱 심각하다. 그런줄을 뻔히 알고 또 인정하는 정부가 이와 관련된 모든 판단을 오로지 사법기관에 밀어버린다면,그것은 「저지르고 뭉개기」의 6공행태치고도 지나친 것이라 할 수 밖에 없다. 그런 바탕위의 방송정책이 잘되면 또 얼마나 잘 될 수가 있을까.

언론통폐합­언론기본법에 대한 정부의 「뭉개기」는 신문에서도 같다. 그 잘못은 인정하면서도 그에 대한 시정ㆍ청산조치는 나몰라라 하는 것이다. 그 때문에 신문에서도 송사가 잇따르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가지 다른 양상이 보인다. 그것은 한국일보 자매지 서울경제신문의 경우다. 80년 통폐합 당시 우리나라 경제지의 정상을 자랑했던 서울경제는 지금 강제폐간에 따른 실피해의 10%인 1백억원의 국가배상을 청구해 놓고 있다.

그런데 이 법절차가 다른 송사와 다른 것은,국가배상법 제9조(결정전치주의)에 따라 배상심의가 정부 스스로에게 맡겨져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정부의 「자책」여부를 묻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자책」하지 않는다면,최종 판단은 소송절차를 거쳐 법원이 내리게 된다.

우리가 보기에 헌법 제29조에 규정한 국민의 국가배상청구권 행사를 제약하는 배상법 제9조는 위헌적인데가 없지 않다. 그 조항으로 해서 청구권 소송을 최장 3개월까지 늦출 수가 있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그 제9조로 하여 정부의 「자책」여부를 먼저 물을 수 있는 것은 다행한 일인지도 모른다. 배상청구권의 으뜸가는 취지는 어디까지나 불의의 청산,불의의 재발방지에 있는 것이며,이 경우 정부의 『내 탓이오』가 더 소중하기 때문이다.

이제 판단은 정부에 맡겨져 있다. 이것이 정부로서 언론통폐합 잘못을 규명하고 청산할 마지막 기회가 된다. 여기 이르러서까지 「저지르고 뭉개기」가 계속될지를 주시하는 것은,비단 방송ㆍ신문공사의 당사자만은 아닐줄로 안다.<상임고문ㆍ논설위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