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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시민이 바로잡아야/안병영 연세대 사회과학대교수(정치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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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시민이 바로잡아야/안병영 연세대 사회과학대교수(정치진단)

입력
1990.11.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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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잉기대ㆍ정한벗고 선택의 주체로아마도 요즘처럼 우리의 현실정치와 기성정치인에 대해 모든 국민이 크게 실망하고 좌절했던 때도 별로 없었던 듯하다. 많은 이들은 이제 정치란 것이 우리의 삶에 무익하다는 생각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아예 유해하다는 극단적 반응까지 보이고 있다.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가운데 서서히 정치의 계절이 다시 다가오고 있다. 지방자치시대의 개막을 앞두고 곳곳에서 정치 지망생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고,이들을 위한 각종 연수프로그램이 다양하게 선보이기 시작했다. 이른바 차세대 정치인이 될 이들을 바라보면서 부디 국민의 지탄을 받는 기성정치인들의 복제품이 되지 말기를 비는 마음 간절하다.

그런데 우리는 한국 정치가 이 지경이 된 원인을 흔히 기성정치인의 탓으로만 돌리려는 습성이 몸에 배어 있다. 그러면서 은연중 이처럼 암울한 한국 정치의 현주소가 자신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듯 치부해 버리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그러나 여기서 분명히 해야할 것은 우리가 한국 정치의 장에서 자신의 위치를 한낱 「관객」의 자리로 한정시키는 한,이 나라의 정치는 기성정치인들의 「권력노름판」으로 전락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이제 정치마당에서 시민의 전략적 위치를 정립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한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로 정치에 대한 우리의 기대수준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흔히 우리는 정치에 대해 과잉기대를 투사하고 쉽게 열광하다가 그 꿈이 깨지면 아예 정치를 「더러운 것」으로 매도하고 등을 돌리곤 한다. 이처럼 정치에 대한 애증이 심하게 교차하는 것은 그리 건강한 것이 못된다. 바야흐로 민주화시대를 여는 이 마당에 백마를 타고 우리앞에 다가오는 초인이나,「플라톤」의 철인왕을 기대해서도 안되며,그렇다고 그 마당이 혼탁하다고 쉽게 떠나서도 안된다. 그것은 우리의 중요한 삶의 현장이고 또 이 사회의 축도이다. 그 때문에 좋든 싫든 우리는 그곳의 주인으로 남아있어야 한다.

한국인들은 확실히 정치에 지나친 기대를 거는 경향이 있다. 많은 이들이 기성정치 지도자들에게서 염증을 느낄뿐 아니라 지금 막 성장하는 차세대 지도자중에도 마땅한 인물이 없다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제 민주화시대에 걸맞게 이들 차세대 정치지도자가 갖춰야 할 덕목과 요건을 얼마간 낮출 필요가 있다. 최소한의 도덕성과 사회적 양식을 갖추고 아울러 정치세계에서 자신의 꿈을 펼치려는 사람이면 일단 합격점으로 보아야 한다. 그 정도만 되면 권력 그 자체에 탐닉하여 국민에게 거짓 명분과 허언만 일삼는 거물급 기성정치인들보다 한결 낫다.

이들이 기성 정치인들의 그늘에서 일찍 시들기 전에 우리가 발굴하고 키워야 한다. 19세기 프랑스의 역사가 「토크빌」이 1년간 미국을 견문하고 『그곳에는 기껏 작은 거인들(Little Giant)이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지만,정작 우리가 필요한 것은 이러한 인물들이다. 실제로 이들은 우리 주변에서 그리 멀리 있지 않다.

두번째로 우리는 한국 정치속에 미만되어 있는 정과 한 그리고 감성의 부하율을 크게 낮추고 이성정치의 풍토를 새롭게 일구어야 한다. 사람의 자질이나 그의 정책을 따져보기 전에 혈연,지연,학연 등 끈끈한 연고의 망을 들추고 무언가 연이 닿으면 무조건 밀어주는 비이성적 정치관행은 하루 빨리 불식되지 않으면 안된다.

여기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기성 정치인들이 정한에 약한 한국인의 심성을 십분 유효하게 이용하고 이를 끝없이 증폭시킨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가 정한정치의 여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결국은 기성정치인의 인질로 잡혀 있을 수 밖에 없게 된다.

정한을 부추기는 정치적 토양속에서는 항상 감정이 과잉분출되어 쟁점이 흐려지고 이성적 토론의 여지가 크게 줄어든다. 한마디로 정한정치,감성정치의 문화속에서는 정치의 기류만 팽만할뿐 정치의 본질은 실종된다. 이제 우리는 이성정치의 차원에서 모든 정치적 의제를 합리적으로 따져 보지 않으면 안된다.

셋째로 우리는 주체적 시민문화를 지속적으로 키우고 가꾸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선거의 중요성을 깊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모든 개혁의 출발점은 선거이다. 요즘 자주 거론되는 정치인의 자질개선이나 세대교체 등도 따지고 보면 결국 선거를 통해 이루어 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깨끗한 선거를 위해 스스로의 옷매무새를 가다듬어야 할 뿐더러 일보다 말을 앞세우는 정당이나 정치인을 가려내고 이들을 가차없이 정치적으로 무력화시켜야 한다. 시민들의 민생동기 없이 정치인의 민생동기가 제고될 수 없다는 사실을 바르게 인식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시민들은 항상 깨인 의식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정치의 운영과 정치인의 행위를 평가ㆍ감시하고 필요한 경우 여론을 진작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공공선을 제고하기 위한 시민운동에 참여하고 공적 토론을 통해 시민문화를 활성화시키는 일도 필요한 작업이다.

최근 거물급 기성정치인의 정치퇴장을 요구하는 소리가 자못 높다. 그들이 아직도 한국의 정치무대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하며,때로는 공천권을 통하여 정치인의 메커니즘을 통제하고,또 때로는 그 알량한 대권전략에 따라 지난 대통령선거 때처럼 국민에게 최악의 정치적 선택지를 내보이기도 한다.

어찌보면 국민들은 아직도 그들의 정치적 볼모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의 정치퇴장을 스스로의 개인적 윤리적 결단에만 의존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시민들이 정치적으로 깨인 인식을 가지고 정치적 선택의 주체임을 스스로 선포할 때,그들은 더이상 권력동기로 얼룩진 반시민적 정치각본의 집필을 계속할 수 없을 것으로 본다. 이제 우리는 주체적 시민문화의 창출을 통하여 굴절된 한국 정치의 현실을 개혁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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