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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과연 「무계급사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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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과연 「무계급사회」인가”

입력
1990.11.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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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학자들 「부의 공정한 재분배」위해 제기/「부익부 빈익빈」구조적 정착/“부유층 「무계급 신화」전파로 우민화”미국은 과연 계급없는 사회인가.

대다수 미국인들,특히 보수우익의 정치인들은 소련의 공산독재폐기와 동구권의 공산정권붕괴 등 사회주의진영의 대변혁이 사회주의에 대한 자본주의의 우월성을 입증한 역사적 사건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최근 공황의 불길한 그림자가 미국경제를 덮기 시작하면서부터 사회주의 진영의 이같은 변화가 곧바로 미국사회의 내부모순을 정당화 하는 근거가 될 수 있느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이 냉전에서 승리했음을 공언하는 보수정객들의 기세에 잠시 주춤했던 좌파학자들은 이제 그들의 사회주의적 시각을 미국 내부로 돌려 빈곤계층의 문제를 파헤치려는 분석틀로 삼고 있다.

그결과 지금까지 미국사회를 설명하는데 전혀 적합치 않은 개념으로 사용이 금기시 돼왔던 「계급」이란 사회주의 용어가 심심치 않게 신문지상에 등장하고 있다. 이 용어를 사용하는 필자들은 미국은 「부익부 빈익빈」현상이 구조적으로 정착된 계급사회라고 진단한다.

예컨대 벤자민ㆍ디모트 암허스트대 인문학교수는 최근 뉴욕 타임스지에 기고한 글을 통해 『미국사회의 생활패턴과 공공정책은 점점 더 가진자만의 이익을 옹호하는 쪽으로 고착되고 있지만 「무계급의 신화」에 세뇌당한 미국인들은 이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 좌파논객들이 펼치는 논지의 결론은 프롤레타리아혁명의 불가피성과 같은 과격한 주장은 아니지만 「부의 공평한 재분배」라는 사회주의의 고전적 주제를 강조함으로써 공공정책의 대폭적인 수정을 촉구하고 있다.

이들의 시각에 따르면 과거 가난한 자에게 무한한 기회의 나라였던 미국은 이제 유산계급과 무산계급으로 사회구조가 굳어짐에 따라 빈곤층의 경제적 신분상승 통로가 봉쇄된 계급사회로 변질됐다는 것이다.

주택문제를 일례로 살펴보면 미 정부는 해마다 4백억달러에 이르는 주택기금을 조성해 연수입 5만달러 이상의 고소득자의 주택마련에 보조하고 있다. 그러나 뉴욕시에서만 저소득층 17만가구가 공공주택을 분양받기 위해 몇년씩 기다리고 있는데 이들에게는 별다른 배려가 없어 저소득층의 집마련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렵다는 것이다.

또 미국에서는 매년 7만명의 저소득층 근로자가 산업재해와 직업병으로 죽어가지만 이들의 존재는 거의 공공의 관심권 밖에 은폐돼 있다. 만일 전문직에 종사하는 화이트칼라가 직업과 관련,이 인원의 백분의 일이라도 사망할 경우 대책마련에 온 미국이 소란을 떨 것이 분명하다고 좌파논객들은 비꼰다.

얼마전 뉴저지주의 진보적인 주지사 제임스ㆍ플로리오가 빈부격차를 줄이고 빈곤층의 교육기회를 넓히는 과감한 계획을 발표한 적이 있었다. 이때 뉴저지주의 부유층 거주지역으로부터 강한 반대의 소리가 터져나왔다. 예산증가로 자신들의 세금이 늘어날 것이라는 불만의 소리였고 결국 계획은 좌절됐다.

부유층의 이같은 집단이기심은 미국사회가 계급없는 평등한 사회이며 빈곤은 사회구조의 탓이 아니라 게으른 개인의 책임이라는 「무계급의 신화」에 근거하고 있다고 좌파이론가들은 분석한다. 덧붙여 이들은 언론과 교육기관이 「무계급의 신화」를 전파함으로써 불공평한 부의 분배를 계급착취로 인식할 수 없도록 우민화시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좌파 학자들의 이같은 문제제기에 대해 미국의 보수정치인들은 짐짓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조지ㆍ부시 대통령은 『계급이란 유럽이나 여타 나라들에나 해당될까 미국에는 전혀 적용될 수 없는 개념이다. 미국에 계급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단언한다. 다른 정치지도자들도 『존재하지도 않는 계급의 타파를 위해 미국의 기존생활양식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는 입장을 확실히 하고 있다.

그러나 겉으로는 무심한 척 해도 미국의 보수정치인들은 속으로는 때아닌 사회주의 시각의 대두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빛이 역력하다.

지난달 8일부터 이틀간 뉴욕에서 개최됐던 사회주의 인터내셔널대회에 대한 미국정치인들의 반응에서 이러한 초조감을 읽을 수 있다.

28개 집권당을 포함한 전세계 91개 사회주의정당 대표가 참가한 이 대회를 지켜보는 미국 정계지도자들의 시선은 매우 냉랭했다. 데이비드ㆍ딘킨스 뉴욕시장은 『사회주의는 미국에선 벌써 한물간 이념이다. 미국의 사회주의정당은 기껏해야 1만명 정도의 당원을 지녔을 뿐』이라는 무례한 말을 환영사랍시고 했을 정도였다.

미국사회가 계급사회냐 아니냐를 가리는 작업은 어쩌면 학문적 논의에 그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회주의 시각에 대한 미국 정치인들의 이같은 알레르기성 반응은 냉전종식 이후 이념과 의제의 빈곤속에서 표류하고 있는 미국정치의 한 단면을 반영하는 것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김현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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