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통합따라 「국제적 고아」전락”/“독재자 출현 언제라도 가능”반론엄격한 영세중립의 외교정책을 표방해온 스위스가 최근 페르시아만 사태 발생 이후 단행된 유엔의 대 이라크 제재조치에 동참한 것을 계기로 스위스 국내에서는 중립정책 견지 여부를 둘러싼 찬반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스위스가 사상 처음으로 국제적 분쟁에 관한 유엔의 제재조치에 개별국가 자격으로 동참한 것은 스위스의 대외 중립노선에 근본적인 변화를 초래할 것이며 이는 곧 수세기간 엄격하게 지켜져온 중립적 외교전통이 깨지기 시작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물론 스위스는 아직 유엔의 정식 회원국도 아니고 중동에 직접 병력을 파견하지도 않았으므로 유엔의 이라크 제재결정에 스위스가 동참한 사실 하나만 갖고 지나치게 확대해석할 필요는 없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동ㆍ서 냉전체제 와해 및 유럽통합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는 가운데 발생한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과 스위스의 이라크 제재조치 동참은 군사력이 상당한 스위스가 중립외교에서 탈피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한 것도 사실이다.
스위스는 1815년 빈 회의 이후 엄격한 중립외교 전통을 유지해 왔지만 이제는 급변하는 국제환경에 발맞추어 중립외교정책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스위스 정부와 국내 지식인그룹 사이에서 강도높게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르네 펠베르 스위스 외무장관은 유엔의 대 이라크 제재조치에 스위스가 동참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면서 『이제는 우리의 중립성을 재검토할 때가 온 것 같다』고 해 외교정책상의 변화를 예고했다.
스위스의 외교정책 전문가인 디트리히 쉰들러 교수도 『스위스의 대 이라크 제재조치 동참 결정은 스위스의 중립정책에 있어 하나의 이정표』라고 전제,『유럽대륙이 하나로 통합되면 고립되어 있을 수는 없으며 자체 군사력으로 주권을 지킨다는 것도 무의미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1인당 국민소득이 세계 1위(89년 3만2백70달러)라는 탄탄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지방분권적 「선진정치문화」를 향유해온 스위스는 유럽공동체(EC)를 중심으로 한 유럽의 정치ㆍ경제통합에서 소외될 것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수출입의 60% 이상을 유럽에 의존하는 스위스가 중립외교노선 표방으로 얻을 수 있었던 냉전시대의 반사이익에 계속 연연할 경우 자칫 「국제고아」로 전락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 86년 유엔 가입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에서 75.7%가 반대해 같은 중립국이면서도 유엔회원국인 오스트리아나 스웨덴과 달리 스위스는 아직 유엔에 가입이 안된 상태이다.
그러나 향후 유럽통합이 실현되어 전 유럽이 단일 통치형태를 갖추고 매우 안정된 집단안보체제를 형성할 경우 스위스의 중립성은 목적을 상실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펠베르 외무장관은 『유럽 각국이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신속한 대응을 하는데 스위스만 팔짱을 끼고 구경할 수는 없다』며 『이제는 시대의 조류에 따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스위스의 전통적인 중립외교를 지지하는 보수층은 『동서유럽의 통합은 일시적일 수 있고 스탈린ㆍ히틀러와 같은 독재자도 언제 나타날지 모른다』며 중립외교탈피 주장에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중립외교탈피 반대론자들은 스위스의 전통적 중립정책이 단기적인 정치전략이 아닌 국민적 철학임을 내세우며 오히려 중립정책을 더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유엔 회원국이 아니면서도 각종 유엔기관등 1백20여개의 국제기구가 집중된 탓에 유엔회원국 이상의 대우를 받고 있는 스위스의 중립외교정책 탈피논쟁은 유럽통합이 가속화되면서 더욱 「뜨거운 감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장현규기자>장현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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