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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카라과 새정부 「민주실험」 표류(세계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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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카라과 새정부 「민주실험」 표류(세계의 창)

입력
1990.1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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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범 7개월… 토지개혁 백지화로/정권 이양한 오르테가 재기 노려좌우익간 유혈내전과 쿠데타 빈발로 정치경제적 불안정이 만성화된 중남미에서 최초로 좌우익의 평화적 정권교체를 실현한 니카라과가 지금 「민주주의실험」을 한창 진행중이다.

이는 지난 2월 선거에서 현 차모로 대통령에게 패배,11년간의 산디니스타 좌익정권 통치를 마감한 다니엘ㆍ오르테가 전 대통령의 정상적인 재기 여부와도 맞물려 관심을 모으고 있다.

각 정파의 무장해제,산디니스타 집권시의 유산처리 및 경제난타개 등 산적한 현안 해결이 차모로 정부출범 7개월이 되도록 표류하고 있어 오르테가의 정치적 입장과 거취는 니카라과 내전의 「실질적」종결에 결정적 변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오르테가는 79년 소모사 독재정권을 축출한뒤 11년동안 니카라과를 통치해온 좌익정권의 최고지도자이며 7만명의 최대무장병력을 거느린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FSLN)의 혁명영웅이기 때문에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니카라과 정치안정과 경제발전에 절대적인 것이다.

오르테가는 사실 지난번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해 좌익혁명정권의 업적을 평가받고 친미 콘트라반군과의 오랜 내전으로 이반된 민심을 수습한다는 복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선거개표결과 국민야당연합(UNO)의 차모로의 승리가 확정되자 오르테가는 즉시 『선거결과에 나타난 수치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라며 패배를 인정,평화적인 정권이양을 약속함으로써 주가를 더욱 높였다.

오르테가는 당시 차모로 후보가 6년 임기의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 최종확인된 직후 차모로의 선거본부를 방문,우익정파에 승리를 안겨준 예상밖의 선거결과를 인정하며 피폐한 니카라과의 재건을 위해 기꺼이 「야당총수」로 물러설 것을 약속했다.

그러나 산디니스타 좌익정권 당시 가장 심혈을 기울여 추진해온 토지개혁정책이 지난 5월 차모로정권 출범 1개월만에 백지화되자 오르테가는 『차모로정부의 토지개혁 백지화선언은 위헌이고 소모사 독재정권의 부활을 초래할 것』이라고 전제,『최근의 정부정책은 내전의 평화적 종결에 찬물을 끼얹는 구태』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차모로 현정부가 과거 산디니스타 좌익정권이 추진했던 과감한 혁신정책들을 하나하나 폐기시키고 있어 좌ㆍ우익정파간의 협조분위기가 난관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오르테가는 46년 11월 탄광도시 라리베르타드에서 출생,반소모사정권 게릴라투쟁을 해온 부친의 영향으로 15세때부터 반체제활동에 눈을 떠 61년 코스타리카의 산호세 망명지에서 창설된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FSLN)에 가담하면서 본격적인 직업혁명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오르테가는 79년 7월 40년간의 족벌독재정치를 해온 소모사정권이 몰락하고 좌익혁명이 성공하자 국가재건평의회의장에 취임했고 84년 11월에는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됨으로써 합법적인 좌익정권의 최고실력자로 부상했다.

대통령 취임후 오르테가는 자신의 동생으로 현재 국방장관겸 군참모총장인 옴베르토ㆍ오르테가와 함께 농촌게릴라 투쟁론과 합법투쟁론으로 분열돼 있던 FSLN노선을 통일시켰으며 생산수단의 국가소유와 개인소유를 병행시키는 점진적인 사회주의정책을 강력히 추진,「혁명가적 지도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오르테가는 6년간의 집권기간내내 미국의 철저한 정치ㆍ경제제재와 미국의 노골적인 지원을 등에 업은 콘트라반군의 공세로 곤욕을 치렀다.

미국의 앞마당인 중남미에 「제2의 쿠바」가 등장하는 것을 탐탁치 않게 여긴 레이건 미 행정부는 오르테가의 반미 사회주의정책을 사사건건 견제하고 나섰다.

결국 오르테가의 니카라과 좌익정부는 내외부적 장애요소를 극복못한채 연평균 인플레가 2만%를 웃도는 경제난국에 직면,지난 2월의 대통령선거에서 패배하고 말았다.

물론 산디니스타 좌익정권의 기여도 없지 않다. 오르테가는 집권 이후 가장 먼저 토지개혁을 단행,전인구의 7%에 해당하는 대지주들이 소유하고 있던 땅을 12만가구의 소작농에 균등분배했으며 농촌계몽대를 통해 50%가 넘던 문맹률을 13%로 끌어내리는 가시적 성과를 거두었다.

오르테가는 대통령선거에서 패배한 뒤 『이번 선거는 UNO에 표를 던지지 않으면 전쟁과 경제파탄이 계속될 것이라는 위협속에서 이루어 졌다』고 지적하고 『그러나 선거의 패배가 혁명의 종말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차모로정권 수립 이후 토지개혁정책 백지화 및 화폐평가 절하 등의 보수적 정책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오르테가와 FSLN은 니카라과 최대단일정당으로서의 입지와 영향력을 고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검은 뿔테안경에 콧수염,그리고 게릴라용 얼룩무늬전투복에서 콘택트렌즈와 청바지로 변신한 오르테가는 『어떠한 경우에도 민주주의는 계속돼야 한다』며 6년뒤의 재기를 다짐하고 있다.<장현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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