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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U 「평양총회」의 뜻/정재문 국회의원ㆍ민자(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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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U 「평양총회」의 뜻/정재문 국회의원ㆍ민자(시론)

입력
1990.1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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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루과이 총회 참관기6년동안의 의정생활에서 한해도 빠지지 않고 참석한 국제의회연맹(IPU) 총회였지만 이번 우루과이 총회에서의 감동은 결코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이번 총회는 91년의 총회를 내년 4월29일부터 5월4일까지 평양에서 열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여기에는 우리측의 적극적인 지지가 결정적 도움이 됐다.

남북 고위급회담의 진전등 확연한 남북관계 개선조짐이 급기야는 1백년 전통을 자랑하는 IPU에까지 파급된 것이다. 우리가 평양개최를 지지한 것은 우리의 30년 IPU외교사상 하나의 큰 사건이었다.

평양개최를 결정한 84차 IPU총회는 UR협상의 태동지인 우루과이의 풍광좋은 해변휴양지 푼타델 에스테의 산라파엘호텔에서 10월15일부터 21일까지 열렸다.

우리측 대표단은 국회 외무위원장인 박정수 의원을 단장으로 최운지 도영심 의원과 필자 등 4명으로 구성됐다. 회의장소인 산라파엘호텔은 지난 86년 UR협상으로 불리는 제5차 다자간 무역협상이 시작되었던 바로 그곳이다.

UR협상이 우리나라를 들끓게 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이 해변은 우리와 매우 인연이 깊은 셈이다.

필자는 이번 회의에 참석하는 동안 「역사의 현장」에 있다는 가벼운 흥분을 억제하기 어려웠다. 우리가 평양개최를 지지할때 각국 대표단은 놀랍다는 표정이었고 이 놀라움은 곧바로 찬사로 바뀌었다.

지나간 얘기지만 북한 대표단은 IPU총회의 평양유치를 위해 일본 대표단에 먼저 협조를 구했다. 북한이 자기네들의 폐쇄성을 지적하는 국제여론이 높음을 의식해서 IPU총회 유치를 결정해 놓고도 동족인 우리보다는 일본에 먼저 접근해야만 하는 분단의 「냉엄한 현실」이 안타까웠다.

우리 대표단은 북한의 IPU총회 평양유치를 가능한 모든 방법을 통해 지원했다. 기조연설에서 평화공존과 국제협력에 바탕을 둔 문제해결을 강조했고,아태그룹 15개국 모임에서는 차기총회의 평양개최를 적극 지지한다고 아예 공개선언을 해버렸다.

또 최근들어 우리와 정식외교관계가 수립된 소련과 동구 8개국 대표들을 초대해 한­소,한­폴란드 의원 친선협회 결성을 논의하는 자리에서도 북한의 IPU총회 평양유치를 지원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들 나라들은 우리의 적극적 지지태도에 대해 한동안 의아해하더니 그 취지를 진지하게 설명하자 「정말 놀라운 일」이라고 찬동을 표해왔다.

IPU 사무총장도 우리의 태도에 찬사를 보내면서 북한과 평양총회 절차를 논의해 보겠다고 적극적 자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또 북한대표단을 초대한 오찬에서 『같은 민족인데 왜 우리에게 먼저 말하지 않았는가』라고 우정섞인 협조를 제의했다. 그러자 북한대표단은 겸연쩍은 표정으로 『우리들끼리야 언제든지 초대하고 왕복하면 좋지 않느냐』고 말한 뒤 『평양총회에 오면 특별히 좋은 장소에 모시겠다』고 우리의 지지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모습이었다.

평양개최가 결정나자 많은 나라 대표들은 평양총회때 판문점 통과를 희망했다. 판문점에 대해 지니고 있는 이들의 관심도를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이들은 평양총회에 대한 구체적 사항을 논의할때 판문점 통과를 꼭 염두에 두어달라는 당부를 잊지 않고 IPU 사무국에 해놓고 갔다는 후문이다.

항공편이 편리한대로 서울이나 평양에 도착해 판문점을 통과하면서 남북한을 다 보고 싶다는 주문들이었다.

그러나 필자가 북한대표단에 넌지시 허용여부를 물었더니 『판문점은 군사분계선 이어서…』라고 일단은 회의적인 반응이었다. 이 문제는 조만간 IPU 사무총장이 평양을 방문해 북한의 최고인민회의측과 상의해 결정할 문제이다.

필자는 여기에서 불현듯 20여년전의 모스크바 총회 취소결정이 생각났다. 지난 67년 소련은 볼셰비키혁명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IPU총회 모스크바 유치에 성공했으나 당시에는 소련과 외교관계가 없었던 우리나라의 참가문제 때문에 결국은 이 총회가 모스크바가 아닌 IPU본부가 있는 제네바에서 개최됐던 일이다.

소련은 『대한민국과 같이 소련과 외교관계가 없는 나라에도 참가를 허용한다』는 「모스크바 총회 개최에 대한 협정서」에도 불구하고 총회 5개월을 앞두고 우리의 입국을 거부하다가 IPU측의 강력한 항의로 모스크바 총회 자체를 취소해야만 했다.

당시의 우리 국력이나 주변정세를 감안하면 이러한 일들은 획기적인 것이었다.

여기에는 권위와 전통을 자랑하는 IPU가 법이나 국제협약을 지키지 않을 바에는 차라리 해체되어야 한다는 명분론이 큰 몫을 했음은 물론이다.

IPU 평양총회를 얘기하면서 짚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은 북한이 83년 서울총회에 대표단을 보내지 않았다는 사실과 의원수가 6백65명이라는 북한의 최고인민회의의 구성방법과 대표성이다.

내년에 봄이 무르익을 평양에서 열릴 IPU총회는 생각하면 벌써부터 가슴이 뛴다. 대동강변의 수양버들이 푸르름을 더하고 능라도의 벚꽃이 만개한 가운데서 남북한 국회의원들이 자리를 함께 한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중차대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IPU총회가 아닌 남북 국회의원들만의 만남이었으면 더말할 나위가 없겠지만 우선은 어떤 경위로라도 만나 머리를 맞대는 게 좋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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