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누구의 눈에도 민자당의 앞날이 달린 심각한 사태가 벌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자당의 비민주계 고위당직자들은 사태의 본질과 추이를 너무 안이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문제의 확산을 최저의 선에서 막기 위해 사건의 진상을 의도적으로 축소 평가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그같은 안이한 판단이 자칫 당을 깨야 할 지경으로까지 몰고 갈 위험성마저 없지 않다고 보여진다.지난달 31일 청와대 기자실을 찾은 노 대통령은 민자당 내분의 원인과 진상을 묻는 기자들에게 『당 내부문제에 하나도 궁금할 것이 없다. 궁금하지 않은 것을 갖고 언론이 스스로 미로를 만들어 그 미로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방향을 잡고 있으니 국민들도 미로에 들어가게 된다…. 김영삼 대표의 말도 전부 언론이 얘기하는 것에 불과하다. 생각지도 않은 것을 사람들이 자꾸 일을 만들어서야 되겠느냐…. 이제 우리 언론도 대한민국이 뭘 해야 하느냐에 눈을 돌려야지,엉뚱한 데에만 눈을 떠선 안된다』라고 언론을 나무라고 언론을 탓하는 답변을 했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노 대통령의 답변은 조속한 사태수습을 위해 이번 일의 심각성을 되도록 축소시키려는 계산된 것이라고 선의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으나 당내분의 책임일부를 언론의 탓으로 돌리면서 당내의 계파간 싸움을 「애교로 받아줄 수 있는 부부간의 이불속 싸움」 정도로 치부하는 데 대해서는 아무래도 거부감과 괴이함을 느끼게 된다.
국가의 권력구조를 다루는 개헌문제 때문에 야기된 사건이 과연 애교로 봐줄 수 있는 사건이며 그 개헌자체가 집권연장 문제와 직결된 계파싸움의 핵심이었는데도 이 문제를 파고드는 언론의 행위가 『엉뚱한 데에만 눈을 뜨는』 짓이 되는 것인지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언론의 추정이 때로는 지나치게 가상을 전제로 한 내용이 된 적도 없지 않으며,일부 추리를 가미시킨 사태분석이 방향착오로 판명된 경우가 없었다고 우길 생각도 없다. 또 방향설정 자체가 과장된 내용도 있었으며 간혹은 정치인들의 계산된 정보제공을 잘못 정리하여 본의 아니게 편파적이 된 언론도 있었을 줄로 안다. 그러나 언론의 자세가 지엽적인 부문에서의 과오는 있었을지언정 큰 흐름의 본줄기에서 크게 벗어난 적은 그다지 많지 않았으며 그 본줄기의 흐름을 여론과 연결시키는 데 실패한 적도 별로 없었던 것으로 우리는 믿고 있다.
민자당이 이번 일을 계기로 분당으로까지 치닫게 될지 어떨지는 아직 두고보아야 알 일이지만 사태의 본질이 비민주계 고위당직자들의 말처럼 단순한 오해로 빚어진 것이 아닌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며,「시간이 약」이라는 식의 낙관적인 수습방법으로써 결말을 짖기엔 너무 심각한 내용이라는 것도 틀림없는 사실인 것 같다.
근본적인 문제해결책의 제시없는 호도성 수습으로는 사태진정은 기대키 어려울 것이며 시간이 약 아닌 독약으로 작용할 가능성마저 있다는 것을 민자당은 똑바로 인식해야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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