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꿈의 궁전」 판촉중 발표/재불 알바니아인들 「제2의 하벨」 탄생 기대/당국선 「대사관 피신」 재연 우려 대책에 고심/국내 개혁파 지식인들 “조국과 우리를 버리고 탈주했다” 비난알바니아의 작가 가운데서 생존작가로는 최고로 꼽히는 소설가 이즈마일ㆍ카다레 씨(54)가 지난 25일 파리에서 돌연 프랑스에 정치적 망명을 요청,동구권 유일의 공산주의 고도로 남아 있는 알바니아정국에 일대 파문을 던져주고 있다.
카다레는 한달 전부터 프랑스 파야르출판사에서 간행한 자신의 「꿈의 궁전」이라는 우화적 소설의 판촉을 위해 프랑스에 머물러 왔었는데 이날 부인ㆍ두 딸과 함께 정치적 망명을 신청하면서 『조국이 민주화될 때까지 돌아가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
알바니아정부는 26일 카다레의 망명을 「추악한 행위」라고 비난했으나 그의 망명이 강경공산통치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인 뒤 수천명의 알바니아인들이 외국대사관에 몰려들어 끝내 서방탈출에 성공한 지난 6월의 「대사관 소동」을 재연시킬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알바니아 주재 서방외교관들에 따르면 알바니아정부가 카다레의 망명 이후 취한 첫 대응조치는 외국대사관들이 들어서 있는 거리에 철장 바리케이드를 부랴부랴 세우는 것이었다고 전하고 있다.
알바니아정부의 당혹은 카다레가 『노벨문학상을 1천번이라도 탈 자격이 있다』라는 극찬을 받을 정도로 국내외적으로 저명한 소설가일 뿐 아니라 그의 망명발표가 6개국 발칸외무장관회의가 폐막된 바로 그날에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발칸외무장관회의는 알바니아의 전유럽안보협력회의(CSCE)의 가입을 지지하고 그 실현을 희망한다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 결의는 고립을 탈피하려는 알바니아정부의 대외적 이미지를 개선시킬 수도 있는 것이었으나 카다레의 망명으로 그 효과는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된 것이다.
그러나 정부반응과는 별도로 카다레의 망명을 보는 알바니아 국내 지식인의 눈길은 곱지 않다. 개혁을 주장하는 티라나의 문학주간지 드리타지의 동인인 시인 루돌프ㆍ마르쿠는 그의 망명을 「탈주」라고 말하고 『체코의 바츨라프ㆍ하벨은 미국행 제의도 마다하고 투옥을 감수하며 조국을 떠나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또 어떤 작가는 『그가 죽었다면 우리는 그의 재질을 추모했겠지만 그는 우리를 버렸다. 우리는 그에게 원한을 내뿜지 않을 수 없다』고 내뱉고 있다.
그러나 알바니아 내부에서의 이같은 비판과는 달리 재불 알바니아인들은 그의 작가적 용기를 평가하면서 그가 해외 반체제운동의 구심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심지어 알바니아공산독재정권이 붕괴될 경우 그가 하벨처럼 작가대통령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70년 「죽은 군대의 장군」이라는 소설을 발표하면서 국제문단에 등장한 그는 정치적 발언을 지극히 삼간 작가였다. 조심스러운 정치적 처신과 국제적 문명으로 그는 70∼82년까지 인민의회 의원을 역임했으며 작가회의 부회장을 맡기도 했었다.
이번 프랑스어판 「꿈의 궁전」 서문에서 그는 『독재와 시인의 대결에서 한때는 지는 것 같지만 최후의 승리를 거두는 것은 언제나 시인이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내심으로 알바니아의 억압통치를 견딜수 없었던 카다레는 오는 11월19일부터 파리에서 열리는 CSCE가 알바니아의 상황을 전유럽에 알리는 호기가 될 것으로 판단,절묘한 망명의 시점을 택했는지도 모른다. 「내부보다 외부에서 더 잘 싸울 수 있다」는 것을 기대하면서.<파리=김영환 특파원>파리=김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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